등록 : 2011.04.27 19:45
수정 : 2011.04.2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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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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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이라는 이름의 청소년 잡지가 폐간 직전에 있다. 사실상 마지막 호를 만들고 있으니 이미 제 운명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슬프다. 진심이다. 그간 말아먹은 잡지가 몇개인데 청승이니, 라고들 할까 봐서 짐짓 씩씩한 척하지만 순간순간 뜨끔뜨끔 누군가 날 찌르는 듯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아마도 죄책감의 일종일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어른인 내겐 끝까지 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니까.
5년 전 잡지는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사업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때의 지원이라 함은 돈이다. 물론 잡지 한권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액수는 아니었으나 우리는 청소년이라는 미래에 희망을 걸었기에 여타의 출혈을 감수하고 책의 보폭을 넓혀나갔다. 문학과 문화를 아울러 청소년들에게 더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하자, 그래서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게끔 토양이 되어주자…. 9000원, 비싼 커피 한잔 값이라면 해볼 만한 승부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잡지는 내가 안 사면 아무도 안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 인정한다. 내 욕심이 과했다. 청소년은 공부하기 바쁘고, 성숙하느라 아프고, 무엇보다 학교 다니느라 돈이 없다는 것을 내가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거다.
물론 이 모든 사달의 일차적 책임은 내게 있다. 청소년들이 사지 않고 못 배길 만큼 멋진 잡지를 양산해냈더라면 지금 이렇게 구질구질한 변명은 필요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간 스무권 가까이 쌓인 잡지를 하나하나 넘겨보던 어느 밤, 문학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겨하는 고등학생들이 주로 모인다는 인터넷 카페에 접속을 했다. 아이들한테서 여러 통의 쪽지가 와 있었는데 대부분 내용이 이랬다. 이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면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나요? 한달 용돈이 3만원인데 좀 깎아주시면 안 되나요? 잡지인데 부록은 왜 없나요?
지난 주말 강화도에 사는 함민복 시인을 만났다. 그와 나는 한 고등학교에서 함께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스타일은 달랐지만 시를 만지고 사람을 품는 온정은 비슷해서 깨나 어울려 술을 마시던 우리였다. 내가 교실에서 아이들과 말로 시를 쓸 때 그는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축구공으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 안팎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나는 그를 찾곤 했다. 오래 못 본 사이 그는 어머니를 잃었고 아내를 얻었다. 한 번의 장례식과 한 번의 결혼식을 치르는 동안 희끗희끗 흰머리가 더 늘어난 그를 보자마자 나는 상담선생님을 만난 듯했다. 청소년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 같아요. 실체가 없는 괴물이랄까요. 뭘 잘해주고 잘해보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그러자 그가 특유의 제스처인 입 가리고 수줍게 웃는 웃음으로 내게 말했다. 애들이 흥을 잃어서 그래요, 흥. 그게 아주 자연스러운 건데 흥을 부끄러워해요. 애들이 흥도 모르고 말이야, 흥.
점심을 먹으며 얼큰하게 술을 곁들인 우리는 그가 밥벌이 터로 삼은 인삼가게로 다시금 돌아왔다. 가게 앞에 각설이 분장을 한 엿장수가 뽕짝 음악에 맞춰 엿을 치고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함민복 시인도 그의 옆에서 춤사위를 날리기 시작했다. 엿장수 삼돌이가 다 좋은데 춤을 못 춰, 내가 한 수 가르쳐줘야 한다니까. 누가 보면 어떠랴, 엉덩이를 흔들고 어깨를 들썩이며 사람들 앞에서 리듬을 타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어떤 순정을 보았다. 아니 흥을 느꼈다. 어쩌면 내가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문학이 아니라 문화가 아니라 저렇게 자연스럽게 몸에서 흘러나오는 흥의 발산, 그 자유로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잡지 이름을 흥이라고 할 것을. 흥이라 했으면 망하지도 않았을 텐데, 아쉽다 그 흥!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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