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27 19:12
수정 : 2011.07.2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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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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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상사가 꾸중할 ‘잉여짓’을 하는
시간에 가장 창조적인 작업이 이뤄진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음악인들은 다른 건 몰라도 각자 나름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때로는 과도하게 독특한 나머지 대중성이 없어 그걸 갖고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입장인 나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혹자는 우리 음악인들이 갖고 있는 자질을 창의성이라 생각하고 그 비결을 찾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음악인들에게 자주 물어본다. 돌아오는 대답은 음악인에 따라 다르다. 하긴 그러니까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는 거겠지. 그래도 공통적인 부분은 있다. 바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노래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는다.’ 이들 나름의 창의성의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음악인은 아무 일도 없을 때 방에 드러누워 배에 기타를 얹어놓고 뚱땅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노래의 뼈대가 떠오른다고 하고, 다른 음악인은 수업이나 회의에서 딴짓을 하며 노트에 끼적이던 것들이 노래가 된다고 한다. 부모나 상사가 보면 좀 쓸모 있는 짓을 하라며 호되게 꾸중할 ‘잉여짓’ 하는 시간에 가장 창조적인 작업들이 이뤄지는 셈이다.
물론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발상은 발상에 그칠 뿐, 노래가 되려면 화성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고 연주를 위한 연습도 필요하고, 가사를 쓰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경험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새롭고 괜찮은 것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발상은 이 모두를 갈무리할 수 있는 온전한 자신만의 시간,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좋은 발상이라는 게 시간 지나면 배고프듯 자연스레 찾아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온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적절한 수준으로 누적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경험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으로 갈무리되어 탄생한 게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같은 노래들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따지고 보면 오해라 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간인 셈이다. 자신에 대해 돌이켜 보고 생각할 시간. 그에 바탕을 두고 뭔가 새로운 것을 구상할 수 있는 시간. 사람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잠을 정복하지 못하는 게으름뱅이이므로 강제적으로 시켜야만 뭘 하게 된다고 믿는 이들이 오해하고 있을 따름이다. 문제는 돈벌이 안 한다고 방에서 내쫓는 부모로부터 복지 지출의 증대는 노동 의욕을 상실시킨다고 믿는 자본가까지,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이 사회에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주는 급식을 무상으로 하면 애들이 밥 고마운 줄 모르고 게으름 피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 거라고 믿는 이들도 이런 부류다. 하지만 그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에 기초적인 필요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뭔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더 나아가 초등학생에 대한 의무급식이 확장될수록, 최소한 생존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안전장치가 더 많은 사회 구성원을 포괄할수록,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각자의 시간이 더 많이 누적될수록 발상이 가질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늘어날 것이다. 이게 바로 그이들이 입만 열면 얘기하는 창의적인 발상의 원천이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긴 하지만 모두가 넓은 평수의 집에서 매일 쇠고기 구워먹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최소한의 필요만 해결하겠다는 거다. 떼돈이 아닌 이상에야, 여기 드는 돈을 창의성의 원천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싸게 먹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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