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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07 19:18 수정 : 2011.09.07 19:18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새로운 가치를 지닌 예술이 탄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좀더 보편적인 복지다

올해 초,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대다수 예술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인 상황이 생존 자체와 관련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뒤늦게나마 예술인의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 6월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노동자로 인정되는 예술인들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예술인복지법을 의결했다. 하지만 며칠 후, 법제사법위원회는 이 법안을 유보하기로 했다. 예술인을 규정하는 기준이 모호하고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청와대·정부·한나라당의 반대 때문이었다.

핵심은 예술인을 노동자로 규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예술인복지법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부서인 고용노동부는 사용자와 사용-종속 관계에 있는 노동자를 실업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고용보험을 노동자가 아닌 예술인에게 적용할 경우 영세 자영업자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술인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라는 게 그들의 시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얘기는 좀더 명백하다. “근로자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예술인을 고용·산재보험 제도에 편입하는 것은 사회보험 체계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얼핏 그럴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술인이라고 하면 일단 자신의 노래나 책, 그림을 팔아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떠오르니까. 하지만 실제로 많은 분야, 특히 방송과 영화와 같이 집단 창작이 보편화된 분야에서 예술인들은 노동자로서 일을 한다. 다만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불명확한 예술 분야의 특성상 대다수가 고용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들이 얘기하는 ‘사회보험 체계의 근간’이란 될수록 많은 노동자들을 사회 안전망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캐디,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레미콘 기사 등의 직종을 특수고용직으로 분류하고 노동 3권을 비롯하여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분명히 회사나 고용인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으면서 일하고 있는 이들을 말이다. 만약 예술인이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갖게 될 경우 기존에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되어 왔던 다른 직종에 대해서도 고용보험을 확대해야 할 것이라는 게 재계가 근심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정말로 형평성이 문제인 것이라면, 예술인들을 배제하여 하향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고용직 종사자들까지 포괄하여 상향평준화하는 방향이 옳을 것이다.

그나마도 이건 그저 첫걸음일 따름이다. 고용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예술인복지법으로는 문학이나 미술, 음악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특정한 회사나 기관에 속하지 않은 채 ‘상품’이 아닌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인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우수한 작가를 중심으로 한 지원 제도가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시장의 가치를 제도권 예술의 가치로 치환한 것일 뿐, 충분한 것은 되지 못한다. 시장도 제도권도 미처 판단하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 지닌, 그래서 사회가 갖고 있는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예술이 탄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좀더 보편적인 복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여기까지 생각하는 것은 과한 듯. 늦어도 8월까지 처리한다고 하던 예술인복지법은 감감무소식인 상황에서 이제 새로운 문화부 장관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예술 지원 제도를 온통 정치색으로 사분오열시켜 놓은 이명박 정부의 첫 번째 문화부 장관의 후임자는 달랑 7개월 동안 일하고는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후보자의 핵심 기조는 ‘문화 복지’ 개념의 적극적 도입. 아무쪼록 말씀하시는 대로만 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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