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9.26 19:18 수정 : 2011.09.26 19:18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

채무자가 빚을갚고 싶으면
갚고말고 싶으면 마는것인가?

당신에게 1억원을 빌렸다. 빌렸다고는 하지만 갈취했다고 하는 게 솔직하겠다. 왜? 돌려줄 생각이 없으니까.

당신의 그 돈, 1억원이 어떤 돈인가. 일찍이 청계천 미싱시다, 철야를 밥 먹듯 했던 구로공단 음향공장, 40도를 오르내리던 중동 사막에서의 건설노동, 야근과 특근으로 내달렸던 비정규직 용접공, 염소가스 마셔가며 목숨 걸고 작업했던 지하 냉동기계 보수 등등을 전전하며 당신이 죽기 살기로 모은 전 재산, 전세보증금 5000만원에, 따로 사채 5000만원을 더한 돈이다.

왜 빚까지 내서 빌려줬을까. 이자를 후히 준다는 나의 공갈에 혹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사실 내가 조폭이어서 달리 응하지 않을 방도도 없었을 게다. 응하지 않으면? 장담컨대 인생이 심각하게 고달파진다. 나는 행세 좀 한다는 이 나라 권력자들과 형님아우 하는 한 식구로, 맘만 먹으면 당신 하나 쪽박 차게 만드는 일은 일도 아니다. 나는 수틀리면 종종 완력도 동원한다. 달리 조폭인가?

물론 우린 채무자인 나를 ‘을’로, 채권자인 당신을 ‘갑’으로 해서 빌린 돈을 정해진 기일까지 갚겠다는 차용증까지 작성해서 공증도 했다. 그런데 상환기일을 한참 넘긴 이제까지 나는 빚을 갚지 않고 있다. 비록 말로는 늘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하지만, 내 금고가 차고 넘쳐 주체 못할 지경이 된다면(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 채무상환은커녕, 먼저 내가 넉넉해야 빚도 돌려받을 수 있을 테니 당신에게 돈 더 내놓으라고 때론 어르고, 때론 윽박지르고 있다. 당신이 심각한 생계난과 전세난, 가계부채, 게다가 대책 없는 노후대책에 실의한 나머지 자살 직전인들, 하등 내 알 바 아니다.

자, 이제 번거롭지만 ‘당신의 채권’을 ‘국민 기본권’으로, ‘나의 채무’를 ‘국가 의무’로, ‘공증한 차용증’을 ‘헌법’으로, ‘완력’을 ‘공권력’으로, ‘금고’를 ‘국가재정’으로 각각 바꿔 이 글을 다시 읽어 보시라. 너무 심한 야유일까?

헌법은 국민을 ‘갑’으로, 국가를 ‘을’로 해서 권리·의무관계를 체결한 계약서이다. ‘을’은 ‘갑’의 생명과 재산, 나아가 행복하고 존엄한 삶을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미 300여년 전 근대 이후 확립된 국가의 존립근거이다. 국가는 주권자인 국민에 대해 소극적 권리인 자유권뿐만 아니라 적극적 권리인 사회권도 보장할 의무를 진다. 우리 헌법 34조에도 단지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한다”고만 하지 않고, “의무를 진다”고까지 했다. 모름지기 의무란 “사정이 되면 하고, 안 되면 말고”가 아니다. 채무자가 빚을 갚고 싶으면 갚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인가? 이제 “국가재정 형편에 따라 복지 수준을 정해야 한다”는 말은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말로 수정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복지를 둘러싸고 늘 귀신처럼 따라붙는 해괴한 논리가 있다. 재정이 확보되어야 복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린다. 유사한 말로 “먼저 파이를 키워야 나눠 먹을 것도 생긴다”가 있겠다.

그러나 이따위 거짓말에 우린 그동안 얼마나 기만당해왔나. 우리네 삶이 이토록 피폐해진 게 과연 복지과잉 때문이었나. 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시킨 남유럽 경제위기도 다 복지병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거짓말을 넘어 아예 선동을 한다. 둘러보시라. 파이는 세계 10위권으로 커졌으되, 커진 건 재벌 호주머니와 내 빚, 그리고 절망뿐이다. 챙기는 자 따로, 허리띠 졸라매고 인내하는 자 따로 아닌가. 나라 곳간이 차고 넘칠 때까지? 그놈의 곳간 언제나 차고 넘치겠나. 그때가 과연 오기나 하는 걸까.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공감세상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