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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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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항 직원 무뚝뚝하지만
한국 감정노동자 화병보다는 낫다
뜻있는 교민의 후의로 <나는 꼼수다> 구성원 세 사람이 미국을 방문해 체류중이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일부 국민에게 참전주도국 미국은 군대를 보내줬고 식량 지원도 한, 여전히 고마운 나라다. 사법, 경제주권 종속이 우려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우려를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할 뿐이다. 나아가 이 나라로 건너가 공부하고 돌아온 이들을 밑도 끝도 없이 추앙한다.
생애 최초 방미 소회는 간단하다. 한국에서 스리엑스라지로는 맞지 않는 옷이 이곳에서는 엑스라지로도 무난히 소화된다는 점만은 인정하게 된다고.(의류 가격 역시 서울의 3분의 1이라고 이야기하니 이것 역시.) 그러나 휴대전화, 인터넷 등 통신수단이 우리에 비해 현저하게 열악하다. 사설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천만원대 맹장수술이 ‘괴담’이 아닌 현실이라는 점을 직시하게 된다.
물론 간과해선 안 될 여러 장점도 있다. 동포들 상당수는 과도한 부동산 가격, 사교육 비용 등 팍팍한 한국 현실 앞에 역이민할 마음을 고쳐먹게 된다고 한다. 반정부 반자본 시위의 구심체인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지도부가 뉴욕 한복판에 자체 공간을 두며, 무한한 투쟁을 선도해도 누구 하나 불이익 당하지 않는 민주주의 환경 또한 부러운 대목이다. 현지인은 “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국민에게 경찰이 물대포를 쏩니까?”라고 되물었다.
한 가지 장점과 단점이 혼동된 것이 있었다. 서비스였다. 우리나라 경제가 제조·생산업에서 서비스업으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됐다. 따라서 이 분야의 양적 질적 내실성은 세계 최고급이다. 물건 이송하는 퀵서비스는 구업종이다.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건조대에 널고, 마른빨래는 잘 포개서 정리해 놓는 일까지 돈 주기만 하면 뭐든 대행하는 심부름업이나, 고객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주문 사항을 메모하는 항공사 여승무원 모두 서비스 왕국 한국 기업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번 미국 방문 중에 수속 과정이 과하게 지체돼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놓치는 일을 겪었다. 새 비행기에 타는 과정에서 보여준 공항 요원, 미국적 항공사 직원의 태도는 상당히 무뚝뚝했다. 우리의 여정을 인도한 사람은 “미국 노동자는 설령 서비스업이라도 할 일만 한다”고 설명한다. 설령 그렇더라도 자기 전화받는다며 수십분씩 고객을 기다리게 만드는 태도는 과연 온당할까.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살피면, 밥 굶을까봐 자존심을 버리고, 굴욕감을 추스르며 감정노동을 하는 근로자가 한국에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된다. 슬퍼도 화나도 아파도 웃어야 하는 소비자 접대 업무를 담당하는 게 감정노동자의 운명이라지만 그네들도 존엄하게 대접받을 기본권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때를 같이해 며칠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수도권 시민 3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2%가 ‘여성 감정노동자에게 화풀이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올 초 공개된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의 ‘민간 서비스 노동자 삶의 질 연구’를 위한 설문조사에서는 지난해 서비스직 종사자 3096명 중 26.6%가 심리상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중등도·고도 우울증 증세를 나타냈다고 한다. 당하는 족족 앓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나 역시 언행이 일치하는 편은 아니다. 당장 수일 전 인터넷이 끊겼다는 이유로, 서비스 문의요원을 거칠고 큰 소리로 닦달해 통신사 직원을 밤 12시에 불러냈으니 말이다. 감정노동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라면, 조금의 불편, 불쾌를 감내해주는 것이 배려있는 사회의 모본 아닐까. 이런 점에서, 미국, 인정한다. 우리 각하도 미국의 ‘크고 강함’에만 매료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용민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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