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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21 19:30 수정 : 2011.12.21 22:59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공공의 자산을
판돈으로
자신들을 위한
도박 벌인 꼴

“국제적으로 전 세계인의 인정을 받은, 다시 오지 않을 영원한 불멸의 타이틀.” 한국기록원이 기록문화대상 수상자로 제주도를 선정한 까닭을 밝히며 제주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이와 같이 칭했다. 대한민국 최고 기록을 꼽는 기관이라서 그런가, 표현만 놓고 보면 용비어천가 이래 한글로 쓰인 찬양 중에 낯간지러운 정도로는 가히 으뜸이다. 하긴 1년 전 본격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뒤 7대 자연경관 투표에 참여하라는 선전으로 온통 도배되었던 제주도의 열기를 표현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중복 투표를 허용하여 마음만 먹으면 투표횟수를 부풀릴 수 있는 선정 방식을 ‘이점’으로 적극 활용하여 공무원 투표량 할당에 자동전화 시스템까지 동원하여 이뤄낸 성과다. 더군다나 400억원에 이르는 전화요금을 물지 않으면 선정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진 상황이다 보면, 이건 ‘대국민 보이스피싱’이 아니냐는 혹자의 표현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제주발전연구원이 예측한 경제 파급 효과는 무려 연간 최대 1조2000억원! 이 정도면 400억 정도야 껌값이 아니냐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 근거라는 게 이전에 같은 기관에 의해 신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됐던 곳의 관광객이 70% 늘어났다는 정도로 빈약한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외국 매체나 블로그 등에 이에 관한 내용이 심심찮게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의 홍보 효과는 있다고 보지만, 유네스코가 제주도를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한 바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저 태산에 돌 하나 더 얹었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과연 예상하는 것만큼의 효과가 발생할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피해는? 단순히 전화비만이 문제는 아니다. 투표가 한창 진행될 무렵 제주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관광·문화 쪽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을 때 십중팔구가 제주도로부터 뭔가 지원받고 싶으면 우격다짐으로라도 세계 7대 자연경관에 관한 내용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푸념을 했다. 이 도박에 쓰일 판돈을 충당하기 위해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는 ‘깔때기’가 되어 의미 있는 다른 사업에 쓰여야 할 자원들을 빨아먹은 것이다. 앞으로는 선정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서 더더욱 강조할 텐데, 그렇다면 제주를 문화적으로 살찌울 토대를 만드는 작은 실천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의미가 있을 그런 일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이왕 선정이 된 김에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경제적 효과가 나오지 않아 투표에 들어간 비용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아마도 어물쩍 넘어갈 것이다. 결국 언론에 으쓱댈 거리도 만들고 상도 좀 받아서 자신의 이력에 큰 거 하나 남기고 싶어 하는 관리들이 공공의 자산을 판돈으로 자신들을 위한 도박에 꼬라박은 꼴이다. 이건 시장에서 무시된 가치를 보완하며 공공성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시장을 따라가며 돈 되는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앞뒤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도 없이 그저 ‘영원한 불멸의 타이틀’을 원하는 선출직 공무원들의 사익 추구, 그것을 위한 7대 자연경관이다.

이것이 비단 제주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직접 인증샷까지 올려가며 투표를 독려했던 대통령, 제주도에 7대 자연경관이 있다면 그분께는 4대강 사업이 있다. 중앙 정부부터 지방 정부까지 다들 제 이름값 높이는 데 애쓰는 상황, 단순히 전시행정이라는 오래된 말로 형용하기에는 정도가 지나치다.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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