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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8 19:33 수정 : 2012.04.18 19:33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1%의 인디 음악도
조금씩 영역 넓혀왔다
1%의 진보 정치라고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총선 투표 며칠 전, 선배랑 내기를 했다. 진보신당이 정당 투표에서 3% 이상 득표를 해서 비례대표를 당선시키거나 둘 다 싫어하는 새누리당이 1당이 될 경우는 내가 술을 쏘고 그 외의 경우에는 선배가 쏘는 것이 내기의 요지. 그리고 이는 잘 안 팔리는 음악 회사의 사장인 후배를 안쓰러워한 선배가 술 한번 사주려는 ‘후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새누리당이 문대성이나 김형태 같은 말도 안 되는 이들마저 당선을 시키며 1당을 넘어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는 경악스러운 결과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진보신당은… 헐.

투표 전날, ‘정당투표 3% 득표를 위해 60만표가 필요하니 진보신당 당원 1만3000명이 지인 50명을 설득해달라’는 문자를 받고서 하루종일 전화를 했다. 그런데 내 주위에 있는 대다수는 이미 진보신당을 찍기로 결심하고 있었고, 온라인을 통해서만 아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친구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자기 가족들도 설득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대충 합쳐도 50명은 넘는 숫자였다. 선거 기간 내내 진보신당을 지지해 달라고 밑밥을 뿌리면서도 정말로 될까 싶었는데 이런 분위기라면 혹시라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례대표 후보 1번, 현역 청소노동자 김순자’의 힘이었다.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당원이었다가 중년의 나이에 울산과학대의 청소노동자가 되어 ‘동일 노동, 적은 임금’은 물론 심지어 구내식당에서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이런저런 차별을 경험한 뒤 노동조합을 이끌어 투쟁을 통해 상황을 개선한 그녀의 이력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그대로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몇 차례의 분당을 겪으면서 식어 있던 내 마음이 다시금 달아오른 것은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변할 국회의원이 필요하다는, 그렇다면 현역 청소노동자인 그녀야말로 그에 가장 적합한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였을 것이다. 그녀를 반드시 국회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진보신당이 내 주위에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제1당’이었지만 결국 다 합치면 25만명, 전체 유권자의 1.1%에 불과했다는 게 이번 선거의 결과였다. 인간관계라는 게 유유상종이라 정치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기 십상이라는 점을 늘 경계해 왔음에도 혹시나 기대를 했던 것인데, 역시나 그 생각이 맞았다.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은, 그리고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1.1%에 속하는, 한 줌에 불과한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현실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선거였다. 결국 진보신당은 정당법에 따라 등록이 취소됐다.

하지만 1%라는 숫자, 99%의 입장에선 우습게 보일 만한 이 숫자에도 희망은 있다. 존립 자체가 불투명했던 정당, 장기로 치면 차포 떼는 건 물론이고 왕하고 졸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건 실무자들이 가진 역량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더해서 개표 당일마저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현장에 있던 후보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현업 청소노동자로 복귀한 김순자 후보의 모습을 보면 진보신당은 여전히 현시점의 가장 첨예한 노동 문제를 대표할 수 있는 좋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아직 알려질 기회를 얻지 않았을 뿐 조금씩 연결을 늘려나간다면 내 주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점차 설득이 될 것이다. 너무나 희박하고 소소한 가능성이라고? 하지만 극단적인 취향의 편중 속에서 99%를 상대해야 하는 1%의 인디 음악은 어쨌든 여태 이런 식으로 조금씩 자기 영역을 넓혀가며 살아남아 왔다. 1%의 진보 정치라고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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