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8.27 19:20
수정 : 2012.08.2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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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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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은 한국 성인남자의 노골적 욕망을 물화한 대표적 단어다. 그간 안철수라는 인물은 유달리 금욕적인 면모를 보여 왔다. 안철수와 ‘룸살롱’을 엮은 세력은 이를 잘 알고 있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반향을 일으켰다. 걸레에 흙이 묻는다고 호들갑 떠는 이는 드물다. 반면 우아한 순백의 원피스에 튄 김치 국물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강박적으로 빨아들인다.
다들 아는 결론을 말하자면, ‘안철수 룸살롱’ 사태는 지지율에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경찰 사찰 문제로 비화하며 역풍이 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수의 욕망’을 추잡한 방식으로 폭로하려는 시도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안철수를 최대 위협이라 느끼는 세력한테 이것만큼 쉽고 효과적인 공격방식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안철수 쪽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할수록 네거티브 캠페인은 효과를 발휘하게 되어 있다. 안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경험이 아니라 여유와 유머감각으로 보인다.
집요하게 계속된 인신공격과 안철수 캠프의 그리 현명하지 않은 대응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굳건했던 것은, 그만큼 안철수를 지지하는 국민의 열망이 강하다는 방증이다. ‘철수의 욕망’과 달리, (안철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안철수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는 ‘국민들이 안철수를 통해 어떤 사회를 열망하고 있는가’ 그리고 ‘안철수를 지지하는 그 국민은 누구인가’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안철수의 생각은, 그의 말과 글을 종합해 보면 신자유주의라기보다 고전적 자유주의에 가깝다. 신자유주의는 작은 국가, 금융부문 팽창, 조직노동의 무력화라는 목표를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일종의 ‘변혁이념’이다.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유행이 끝나버린 지금, 또한 이명박 정권 5년의 통치가 끝나가는 지금, 안철수 본인이나 국민들이 바라는 사회상이 여기에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안철수 현상은 그런 변혁이념보다 어떤 복고적 미덕에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약속과 규칙을 지키고 허풍을 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답답하고 고지식하지만 견실한 태도 말이다.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다. 세간에 알려진 안철수의 삶은 그런 리더십에 부합한다. 이러한 국민감정은 외환위기 이후 15년간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 광풍이 남긴 피로감에서 기인한다. 물론 여기에는 결정적인 전제가 빠졌다. 안철수가 자본주의 사회의 승리자이며 부자라는 것.
자기계발과 성공신화를 정신없이 탐닉하다 문득 자신이 중산층에서 밀려났음을, 혹은 밀려나고 있음을 깨달은 이들이 다시금 치유의 심리학으로, 정의와 공정의 윤리학으로, ‘안철수의 생각’으로 수렴했다. 이들은 사회의 지배구조가 근본적으로 전복되는 변혁을 전혀 바라지 않으며, 그렇다고 신자유주의 개혁이 지속되는 걸 원하지도 않는다. 단지 미쳐 돌아가는 한국 사회가 ‘정상화’되길 바란다. 나는 그걸 ‘정상국가 열망’ 또는 ‘정상근대 열망’이라 부른다.
근대 민족국가의 완결에 실패한 이후 엄청난 생태적·정치적 대가를 치르며 달성한 경제성장, 꿈같던 버블경제 시대를 거쳐 끝을 알 수 없는 불황으로 진입한 지금, 한국 사회에는 집단적 회한과 개인의 콤플렉스가 켜켜이 침전되어 있다. 한반도는 여전히 휴전중이고, 친일파는 청산하지 못했으며, 나는 중산층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가 갈 수 있었지만 가지 않았던 또 다른 정상적 근대의 경로로 복귀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다만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 안철수는 솔루션(solution)이라기보다 차라리 테라피(therapy)다.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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