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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17 19:41 수정 : 2012.09.17 19:41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결국 문재인씨였다. 이로써 원내 1당과 2당의 후보가 결정됐지만, 이번 대선의 진짜 드라마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안철수씨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를 떠나, 게임의 구도는 ‘박근혜를 이겨라’가 되어버린 형국이다. 진보정당들이 지리멸렬하며 대중의 관심은 ‘누가 박근혜와 붙는가’ 또는 ‘누가 박근혜를 이길 수 있나’로 모아졌다. 한국의 대선국면에서 3개월은 ‘조선왕조 300년’이므로 벌써부터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말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 그보다는 이번 대선의 ‘전선’이 어디에 놓이게 될지를 예상하는 게 좀더 흥미로워 보인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제18대 대선의 성격’이다. 현실적으로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세대전쟁’, 다른 하나는 ‘지역전쟁’이다. 세대전쟁은 세대별 투표양상이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을 의미한다. 지역전쟁은 전통적인 지역별 투표성향이 결과를 정하는 선거를 말한다. 세대전쟁이라 해서 지역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느 쪽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지의 문제다.

우리 사회의 지역주의는 과거보다 많이 약화됐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역별 투표편중 현상은 한국 정치의 현실로 엄연히 존재한다. 성폭행을 하건, 학위논문을 표절하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지역들이 여전히 널려 있다. 또한 그런 지역의 주민들을 우매한 대중이라 조롱하는 개혁성향 시민들에 의해 그곳은 점차 ‘꼴통들의 서식지’로 게토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고도성장기에 그래도 살 만했던 도시들은 쇠락한 지 오래다. 모든 자원을 독점하고 나날이 덩치가 커지는 수도권은 지방의 젊은이들마저 무섭게 빨아들였다. 이제 농촌뿐 아니라 지방의 어지간한 도시도 ‘노인들의 나라’다. 이들의 팽배한 피해의식은 지역 정치인의 선동에 의해 몇 배로 확대재생산되며 지역 토호들의 욕망과 쉽게 유착해 토건주의로 귀결한다. 오늘날의 지역주의는 단지 몽매한 대중이 유포하는 인종적 편견이 아니라 성장이 멈춰 쪼그라드는 지방과 점점 더 괴물이 되어가는 수도권의 거대한 위치에너지 차이가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이데올로기다. 대선이 지역전쟁 양상을 띠게 된다면 어떤 정치세력에게 유리할지는 자명하다.

현재 민주당을 포함한 중도개혁세력은 노골적으로 ‘2040세대’를 호명하고 있다. 세대전쟁이 그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엔 경험적 근거가 있다. 2002년 대선은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젊은 세대가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선거였다. 한편 2007년 대선에선 ‘2040세대동맹’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2002년과 달리 2007년에는 세대를 가르는 대립적 의제가 거의 없었다. ‘경제 대통령’이 시대정신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의제가 대립적 의제로 등장하느냐가 2040세대동맹의 성패를 가를 최대 관건이다.

‘젊은 세대니까 진보’라는 안이한 전략으로 세대동맹을 선동하다간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다. 한국에서 특정 세대의 이념성향은 불과 1년 사이 우파에서 좌파로 옮겨갈 정도로 신뢰하기 힘든 지표다. 폭발력 강한 의제가 제시되고, 그 의제를 통해 젊은 세대 스스로가 ‘지금 사회변화에 역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실감을 줄 수 있다면, 젊은 세대는 뜯어말려도 투표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반면 그런 의제가 제시되지 않고 물에 물 탄 듯 서로 비슷한 이야기들, 예컨대 ‘복지’ ‘경제민주화’ ‘살기 좋은 나라’ 같은 추상적 당위만 남발한다면 이번 대선은 2007년 대선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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