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20 02:20
수정 : 2012.12.2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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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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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선이 끝났다. 한국 사회를 거의 중간지대 없이 둘로 나누었던 거대한 진영 간의 대결이 끝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 격차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거대한 둘, 과연 이 분열은 이제 해소될 수 있을까.
실은 이 글은 대선이 끝난 다음 날인 오늘이 아니라 대선이 진행되던 어제 썼다. 나에게 이것이 글인 시간은 결과를 추측하는 일이 막막하던 때다. 그리고 독자에게 이것이 글로 기억되는 시간은 결정된 결과를 전제로 새 시작을 상상하는 때일 것이다. 어제와 오늘, 그 하루의 격차가 이렇게 큰 날도 드물겠다.
선거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가장 아픈 기억으로 새겨진 단어는 ‘종북’이다. 선거 사흘 전 3차 대통령 후보자 토론 때 그렇게 어눌하고 과묵했던 박근혜씨가 여러 차례 힘주어 사용한 단어의 하나다. 그 순간 이 말은 자신이 대표하고 있는 한편을 제외한 다른 절반 전체를 지칭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교인 수 1만5000명 대형 교회인 큰믿음교회 목사 변승우는 설교에서 “독재가 더 위험한가 빨갱이가 더 위험한가, 친일이 더 위험한가 빨갱이가 더 위험한가”라고 소리쳤다. 그 자신이 시답지 않은 이유로 개신교 주류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되어 배척되고 있음에도, 그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편에 서 있지 않다는 시답지 않은 이유로, 그 상대편 사람 모두를 향해 자기가 가장 증오하는 용어들인 ‘빨갱이’, ‘종북’이라는 말로 저주를 퍼부었다.
이근안씨는 고문의 대상이 ‘빨갱이’라고 믿었기에 그 이들에게 물고문, 전기고문, 관절뽑기 고문을 가하면서도, 자기 앞에서 저들이 오줌똥을 싸고, 정신이 돌아버리고 신체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어도, 그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했다.
곧 변승우, 이근안에게서 이 말은 ‘이단’이라는 말과 동의어다. 어떤 악행, 악심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절대악의 상징이다. 해서 그런 이를 폄하하고 모욕하며 비방하는 어떤 말도 문제가 안 되고, 그런 이를 철저히 파괴시키는 어떤 행위도 정당화된다. 해서 이들 ‘이단’들, ‘종북’들 덕분에 자신의 모든 과오와 권력남용이 정당화된다.
물론 이 점은 변승우를 이단이라고 정죄했던 개신교 주류에 있는 많은 목사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고, 이근안의 목사직 면직을 선고한 교계 지도층 인사들 중 여럿의 생각과도 다르지 않다. 또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씨의 생각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데 그런 ‘종북’들이 국민의 절반이다. 대립하는 진영이 점점 커져 정권교체의 위협세력이 되자 이들은 그 절반을 ‘종북’들로 불렀다. 두 대통령 후보는 모두 국민대통합을 얘기했다. 한데 ‘종북’들은 통합의 대상인가? 혹 남북대화의 선결조건이 필요했듯, 통합에도 ‘개조’라는 선결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얘기가 복잡해진다. 국민의 절반이 된 ‘종북’들은 상대편에 의해 낙인찍힌 호칭이지 스스로가 그렇다고 동의한 호칭이 아니다. 변승우가 이단인 것은 그 자신이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류 개신교 지도자들이 그를 그렇게 지목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다.
한데 ‘개조’라는 말은 낙인‘찍은’ 이가 아니라 낙인‘찍힌’ 이의 과제가 되게 하는 폭력적 단어다. 결국 국민통합은 대통령의 과제가 아니라 낙인찍힌 이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하면, 문재인씨는 몰라도, 박근혜씨에게 국민대통합은 약속이 아니라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그 시끄럽던 대선이 끝났고, 국민대통합의 시간이 되었다. 누가 그 말을 이행할 주역인지 궁금해하면서 나는 이 글을 쓴다. 아무튼 이제 우리는 지켜볼 것이다. 그것을 요구가 아닌 ‘약속’으로 생각하고 실천할 대통령을….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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