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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28 19:28 수정 : 2013.01.28 19:28

박권일 칼럼니스트

행정안전부가 안전행정부로 명칭이 바뀐다는 소식이 들리자 많은 이들이 ‘조삼모사’ 같은 짓이라 비웃었다. 하지만 이렇게 냉소하고 넘길 일은 아니다. 기관명을 바꾸는 일은 말처럼 간단치 않다. 크고 작은 직제 개편이 따르고, 명칭 변경으로 인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국내 행정을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의 이름에 안전이라는 말을 앞에 둔 건 명백한, 그리고 중대한 변화의 예고편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치안국가’로의 변화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갑자기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확실히 강화되어온 어떤 경향이다. 노무현 정부의 ‘행정자치부’가 이명박 정부의 ‘행정안전부’로, 다시 박근혜 정부의 ‘안전행정부’로 바뀌어온 과정은 무엇을 말할까?

‘안전’은 전세계 우파들이 가장 애용하는 단어 중 하나다. 이 말은 유기체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는 ‘생존’이라는 어휘와 쉽게 연결된다. 뿐만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위험들이 상존하는 ‘위험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일종의 가치중립적 수칙으로 여겨지기 쉽기 때문에 보수적 세계관을 은폐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어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면 ‘안전 담론’은 종종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치닫곤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저들’을 우리보다 훨씬 가혹하게 취급하거나 사회로부터 영원히 배제해야 한다.”

안전담론의 구체적 형태는 공안논리와 치안논리이다. 공안논리는 흔히 북풍이나 간첩단 조작사건 등 공안정국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공안논리의 구조는 단순하다. 정보 비대칭 상황(지배권력이 정보를 독점한 상황)에서 외부적 위협을 과장하는 것이다. 일종의 ‘공포 마케팅’이라는 점에서 공안논리와 치안논리는 매우 비슷하지만 공안논리가 냉전 질서하의 집단 정체성을 이용한다면, 치안논리는 일상 속 개인의 불안을 공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공안논리의 ‘약발’이 영 시원치 않았다. 이른바 ‘보수세력’이 ‘북풍’을 계속 시도했지만 선거 시기에도 부동층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마디로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시민들은 이제 간첩단 사건보다 자기 동네에서 발생한 연쇄 성폭행 사건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그리고 인터넷에 환호했던 시민들 중 상당수가 이제는 환멸과 피로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수는 날카롭게 감지했다. 공안논리와 달리 범죄 정보를 적나라하게 공개할수록 치안논리는 더 강력해지고 대중은 더 국가권력의 편에 선다는 사실 또한 보수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수 담론의 무게중심은 공안에서 치안으로 점차 옮겨갔다.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된 뒤 이어진 해프닝들은 치안의 논리가 어떻게 현실화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박인숙 의원 등 새누리당 국회의원 18명과 민주통합당 전정희 의원이 공동 제출한 법안은 “화학적 거세가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물리적 거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리적 거세란 글자 그대로 특정 신체기관을 잘라내겠다는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궁형’이라 불리던 끔찍하고 반인권적인 처벌이다. 또한 수원 20대 여성 살해사건으로 기소된 오원춘에게 무기징역이 확정되자 수많은 시민이 “왜 사형이 아니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등 흉악 범죄가 터질 때마다 싱가포르를 연상시키는 엄벌주의적 발상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5년은 안전을 빌미로 시민의 기본권이 위축되는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5일 대통령직인수위는 차기 정부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청와대 조직개편안을 발표했다. 치안국가에의 예감은 날이 갈수록 불길해진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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