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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20 19:34 수정 : 2013.03.20 19:34

이라영 집필노동자

노동석 감독의 2006년 작품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종종 떠올린다. 영화 속의 한 대사 때문이다. 성실하게 살아도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에게 종대(유아인)는 “일한 만큼만 버니까 우리가 이렇게 사는 거야!”라며 절규한다. 그렇다. 오늘날 많은 임금노동자에게 ‘일한 만큼만’ 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한 만큼만 벌어서 가난해지는 모순.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에서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면서도 가계부채 증가율은 3위를 기록하는 기이한 현상. 그런데 과연 일한 만큼의 대가라도 받고 있기는 한가. 대가는커녕 착취의 다른 이름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지 않은가. 인턴, 무기계약을 넘어 재능기부라는 영악한 언어까지 활개를 친다.

그렇다면 돈이란 어떻게 버는 것일까. 어이없는 질문이지만 가끔은 진심으로 궁금하다. 자신의 노동을 팔아 돈을 번다는 생각은 고지식하다 못해 이제 어리석고 무능력한 인간으로 여겨지기 쉽다. 상속을 받거나 투기를 통해 요술 같은 재주를 부리지 못하는 대다수의 노동하는 삶은 오히려 빚과 함께 버무려진다. 우리는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세상도 있다. 얼마 전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 발표한 세계의 억만장자(약 1조900억원 이상 보유)는 1426명이었다. 사상 최대라고 한다. 수년째 경제위기에 놓였다며 서민들에게 허리띠 졸라매기를 권하는데 억만장자는 점점 늘어난다. 그중에는 한국인의 활약도 눈에 띈다. 2009년에 5명이던 한국의 억만장자는 2010년에는 11명으로 늘어났고 2011년에는 다시 그 두 배인 21명이 되더니 올해는 그나마 증가율이 주춤하여 23명이 되었다. 게다가 국내 최고의 갑부인 삼성 이건희 회장은 지난해 106위에서 올해 69위로 껑충 뛰어올랐으니 ‘국격’을 높인 셈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족 다섯 명이 모두 세계적인 억만장자다. 그중에서 제일모직 이서현 부사장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40살 이하의 억만장자에 포함되었다. 상속과 증여의 힘이다.

불로소득, 이 상속과 증여의 힘을 포장해주는 이들이 있다. 삼성가의 변칙 증여를 변호해주던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를 보면 ‘공정’이라는 언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공정함이란 자본과 재벌가의 손해(?)에 민감한 것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한만수 후보자 자신도 100억대 이상의 자산가라는 점이다. 역시 끼리끼리 놀아야 한다. 억만장자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재산이지만 100억은 분명히 어마어마한 돈이다. 신문기사 속에서나 구경하는 숫자일 뿐 많은 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액수다. 그런데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상속받은 재산도 없고, 투기는 아주 싫어한다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상속과 투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 큰돈을 가졌다면 어떤 ‘공정한’ 과정을 거쳤는지 몹시 궁금하다. 청문회를 주목하자. 100억의 사나이는 ‘국민행복’을 위해 청문회에서 그 100억의 형성 과정을 친절하게 공개해주길 바란다.

‘억’ 소리가 우습게 지나가는 세상이다. 몇 달 전 자살한 노동자 최강서의 유서 속에 적힌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의 ‘손해’ 배상금을 다시 떠올린다. 부당해고에 맞서 파업이라는 단체행동을 한 노동자에게 사쪽은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누구 입장에서 공정함을 따지고 누구 입장에서 손해를 계산하는지 명백히 드러난다. 자본의 손해 앞에서만 철저하게 ‘공정한’ 사회다. 반면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법조차 노동착취에는 무심하다. 자본을 변호하는 삶과 자본에 저항하는 삶의 초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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