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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03 19:17 수정 : 2013.06.04 10:19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성에 대한 욕망은 지배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회학자 이만갑의 말이다. 인류는 남성의 성욕과 권력의 기괴한 조합이 배설한 대가를 꾸준히 치러야 했다. 전제왕권 시대엔 왕이 모든 여성의 소유권을 주장했고, 전쟁이 일어나면 여성은 성적 노리개가 되었으며, 강대국에 젊은 여성들을 조공으로 바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남성의 성욕은 때론 반란의 불씨가 되기도 했으며, 따라서 일부일처제가 하층민 남성들의 성적 불만을 잠재울 의도로 권력자들에 의해 창안되었다는 설도 있다.

한국 사회처럼 성 담론이 금기시되고, 지하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에서, 남성의 성욕에 의해 사회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막대하다. 여기 터부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을 상품화하는 언론의 힘이 결합하면 정치인의 성 추문은 당장 해결해야 할 모든 민생고를 제치고 사회의 가장 시급한 화두가 된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욕이 의식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킨제이는 20세기 중반 두 편의 보고서를 통해 미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동성애 성향과 혼외정사, 난교 등에 관한 체계적 과학연구를 정착시켰다. 동물학자로 혹벌을 연구하던 킨제이가 돌연 인간의 성행위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분명하지 않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에서 그 동기는 혹벌 연구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으로 표현된다. 킨제이는 생물학자였다.

생물학자의 딜레마가 있다. 대부분의 생물학자는 모델생물을 연구한다. 인간을 실험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보편성을 추구한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처럼 다양성과 특수성의 위력을 절감하는 집단도 없다. 프랑수아 제이콥은 ‘대장균에서 사실인 것은 코끼리에서도 사실’이라고 강변했지만, 생물학이 발전할수록 대장균은 대장균이고, 코끼리는 코끼리라는 사실도 분명해지고 있다. 모델생물에서 발견된 사실을 인간에 투영시키는 과정에서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군집을 이루어 사는 조류들은 ‘페킹 오더’라 불리는 사회적 위계를 보인다. 먹이를 먼저 쪼는 순서가 곧 개체가 군집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나타낸다. 사회성 포유류의 대부분이 우두머리 수컷 한 마리가 모든 암컷을 차지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사회구조를 보인다. 인간의 근연종인 고릴라나 침팬지 사회는 섹스와 정치가 밀착된 전제왕권 시대의 판화를 보여준다.

초파리는 독거설 동물이다. 사회성 동물들과는 달리, 초파리 사회에서 수컷과 암컷은 평등하다. 초파리 암컷은 수컷보다 덩치가 크다. 섹스의 결정권은 언제나 암컷에게 있다. 수컷은 감히 암컷을 강간할 수 없으며, 섹스를 원하지 않는 암컷에게 올라타는 수컷은 내동댕이 처지기 일쑤다. 게다가 초파리 수컷은 절대 암컷을 공격하지 않는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수컷을 공격할 뿐이다.

섹스를 거부당한 수컷 초파리가 술에 탐닉한다는 연구결과가 <사이언스>에 실렸다.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섹스에서 보상받지 못한 욕망을 술로 보상받으려는 것 같다고 연구진은 말한다. 반대로, 암컷 초파리는 주변에 기생 말벌이 있으면 고농도의 알코올이 있는 곳에 알을 낳아 알을 보호하려고 한다. 즉, 수컷은 섹스의 대용으로 술을 소비하고 암컷은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술을 이용한다. 섹스와 술의 관계가 이토록 다르다.

인간은 초파리가 아니다. 철학자 무어는 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은 오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자연주의적 오류는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생물학자의 딜레마와 자연주의적 오류 모두를 감내해도 좋다면 한번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될지 모르겠다. 만약 윤창중이 초파리였다면, 결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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