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24 19:05
수정 : 2013.07.2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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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동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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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쟝센 영화제와 부천 영화제를 거치며 몇몇 뛰어난 재능의 여자 감독을 목격했다. 그때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오래된 퀴즈에 부딪친다. 저 재능은 어떤 미래를 맞이할 것인가.
작년 한 여자 감독이 독특한 저예산 독립장편의 편집본을 들고 찾아왔다. 이어서 바로 상업영화의 데뷔를 꿈꾸고 있길래, “개봉 안 하는 게 어때?”라고 서글프게 조언했었다.
당신은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짐이 두 개 더 있다. 그간 여성 감독을 향한 불리한 선입견을 극복하는 것. 또 실패할 경우, 다른 여성 감독에게 굴레 하나를 추가하는 민폐가 될 수 있는 것.
풀어 말해, 첫째, 여자는 소통이 어려우며 리더십이 약하다. 둘째, 여자는 취향이 비상업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반박해 보면, 첫째로 여자 대통령 시대에 통솔력이 성별의 문제라고 우긴다면 비웃음 살 일이다. 또한 영화 현장은 어떤 직업보다 성평등이 확립된 곳이기에 여자라는 문제로 과히 힘겨울 일이 없다. 둘째로 여자들의 취향은 작고 섬세한 것에서부터 크고 거친 것에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어, 난해한 예술영화부터 장르 흥행물에 열광하는 관객 대다수도 공히 여자들이다.
그렇듯 작가와 프로듀서, 마케터, 제작자, 투자사에까지 상업영화에 혈안인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넘치는데, 어째서 여자 감독만이 여전히 규방에 갇힌 비대중적인 종으로 분류될까. 정말 남녀 반반 펀딩을 보장하는 스웨덴 영진위의 쿼터제 도입이 절실한 상황인가. 혹은 모든 여자 감독들이 남성을 남성보다 잘 다루는 캐스린 비글로처럼 변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인권 후진국인 한국만의 문제일까 싶지만, 놀랍게도 유럽과 미국을 다 초월한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남성들이 영화계의 권력을 쥐락펴락하기에 어디서나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가 반복된다고 하는데, 정말 남성 탓일까? 그렇게만 보이진 않는다. 왜냐면, 권력을 가진 여성 대부분도 묘하게 뒤틀린 이 성인지적 편견의 재생산에 동승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져보자. 작년 95%의 남자와 5%의 여자가 영화를 연출했다. 그중 30%는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70%는 실패했다. 그 실패 중 95%도 남자의 영화다. 즉, 통계적으로 남자들의 실패한 영화가 훨씬 많다. 더 중요한 건, 실패한 남자 감독의 영화는 그 내용이 원인이지, 감독이 남자였기 때문이라고 누구도 생각지 않는다. 반대로, 성공한 여성 영화는 반짝 예외로 취급되고, 실패한 여성 영화는 본질적인 여자의 속성 탓으로 정리되고 만다. 마치 한 연쇄살인범이 동성애자로 밝혀졌을 때, 순간 동성애자 전체가 흉악범과 링크되며 불온한 시선을 뒤집어쓰기 십상인 것처럼, 소수자의 부정적인 샘플은 그들의 자질 문제로 쉽게 일반화되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 모든 것이 양이 적기 때문이다. 양질과 저질을 포함해 우선 양이 늘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성의 속성으로 환원되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한 사회심리학 연구는 수학 문제를 똑같이 잘 풀다가도 ‘넌 여자야. 소수인종이야’라는 사실만 인지시켜도 갑자기 수학 점수가 확 떨어진다고 밝힌다. 편견의 대상으로 사회적 정체성이 위협받으면 바로 무기력해진다는 것이다.
여교수, 여검사, 여의사, 여배우를 수놓는 접두사 여. 그건 그들이 소수 후발 주자임을 뜻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여감독은 발음조차 생소하다. 그 단어가 채 굳어지기 전에, 남녀 구분이 없는 요리사처럼 감독 그 자체로 정착되려면, 뭣보다 어떤 여자 감독도 그를 여자로 지목해 정체성을 제한하면 안 될 일이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여감독으로 우선 인지하면 안 될 일이다. 왜냐면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적기 때문이다.
민규동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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