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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09 18:23 수정 : 2013.09.09 18:23

박권일 칼럼니스트

이석기 의원이 볼테르의 유명한 말을 인용했다. “당신의 신념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함께 싸우겠노라.” 사실 볼테르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무렴 어떤가. 저 말은 볼테르의 지론과 닿아 있을 뿐 아니라 자체로 아름다운 원칙임이 틀림없다. 이른바 이석기 사태의 본질은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의 침해’일까? 그러기 위해선 사상 때문에 탄압받고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이석기 의원 스스로 사상과 신념을 공표했을 때. 이를테면 “나는 공산주의자요!” 내지는 “나는 김일성주의자요!”라고 선언하고 그것 때문에 탄압을 받게 되는 경우다. 볼테르의 (것으로 알려진) 금언이 빛을 발하는 건 바로 이런 상황이다. 우리가 호오를 뛰어넘어 어떤 사상에 대한 탄압에 맞서야 하는 이유는 각자 사상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일반적 토대를 지키기 위해서다. 둘째, 이석기 의원이 사상을 밝히지 않겠다고 했을 때를 가정해볼 수 있다. 사상의 자유는 자신의 사상을 공표할 자유뿐 아니라 공표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예컨대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등의 의례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다. 지금 이석기 사태는 얼핏 보기에 첫째가 아니라 둘째 경우인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은 어느 쪽도 아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총기 제조 및 시설물 파괴’ 등을 계획한 구체적 행위이다. 그 행위가 어떤 목적의식이나 이념적 동기에 의해 추동되었다 하더라도 현시점에서는 부차적인 문제다. 요컨대 사상의 자유는 이석기 사태에서 일종의 사이비 쟁점이다. 사상의 자유, “종북” “친북” 등의 이념적 쟁점이 크게 불거지는 상황은 시민들 사이의 혼란과 반목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이념 갈등이 부풀어 오를수록 피아를 가르는 진영 논리가 판을 치게 되고,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작업은 지엽 말단적인 것으로 보이기 쉽다. 댓글 공작과 국내 정치 개입 의혹으로 국정조사까지 받게 된 국정원으로선 “종북” 논란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 자체가 승리하는 과정이다. 한편 이석기 쪽은 사상의 자유가 핵심 쟁점이 될수록 이를 방패 삼아 자신들의 이념을 계속 은폐하며 마녀사냥에 당하는 ‘순교자’로 법정 싸움에 임하기 쉬워진다. 국정원이 제기한 내란 음모, 내란 선동, 여적죄 등은 입증하기 까다롭고 일부 무혐의나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국정원의 공안 탄압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국회의원 이석기를 비판하는 것은 얼마든지 공존 가능할 뿐 아니라, 이 사태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관점이다. 자연인 이석기씨가 불온하고 위험한 사상을 가진 혁명가인지 여부는 우리가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대한민국 의회에 속한 국회의원이란 것, 그리고 유권자들을 기망해온 강력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오랜 세월 국민들을 탄압하고 속여온 ‘기만의 대가’다. ‘일부 엔엘 세력’ 역시 ‘기만의 대가’다. 이들은 당원들 개인 정보를 북한으로 유출시키고, 당내 선거에서 각종 부정을 잇달아 저지르는 등 반민주적 행태를 태연히 벌여오면서도 남한 내 대표적 진보 세력으로 행세해왔다. 여론 주도층의 국민에 대한 책임 윤리란 차원에서 본다면 명백한 선거 부정이 드러났을 때조차 “판 깨지 말라”고 호통치던 유명 논객, “이정희는 진보정당 역사상 가장 유연한 당 대표”라며 호객 행위를 일삼던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 등 “닥치고 통합”을 부르짖던 소위 ‘진보 명망가들’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얼음처럼 냉정해야 한다, 저 기만의 대가들에게 기만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면.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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