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공석 상태가 한달이 넘었다. 지난달 21일에는 총리 지명이 연기됐다가 10분 만에 번복되어 발표되는 터무니없는 해프닝이 있었다. 인터넷 장바구니에 충동적으로 담아둔 상품을 결제할지 말지 망설일 때나 겪어보던 상황이다. 현 정권 들어 지명된 다섯명의 총리 혹은 총리 후보자 가운데 네명이 윤리 결함 문제로 물러나면서, 정부가 마땅하게 돌려막을 패를 다 소진해 버린 듯한 느낌이다. 지난 총리 지명자 가운데 김용준 후보자는 두 아들의 병역 기피와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안대희 후보자는 전관예우 의혹으로, 문창극 후보자는 친일 발언으로, 이완구 총리의 경우에는 뇌물 수수 의혹으로 자기 목숨까지 판돈으로 내건 끝에 각각 사퇴했다. 그런데 새로 총리 후보가 된 황교안 후보자를 둘러싼 잡음은 점입가경이다. 병역비리 의혹, 부동산 투기 의혹, 전관예우 의혹, 과거사 실언까지 황 후보자에게는 다른 지명자들을 낙마시켰던 지나간 의혹들이 거의 다 따라붙었다. 이쯤 되면 총리 후보자 내정 기준이 의심스러워질 지경이다. 속담대로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을 뿐인가? 윤리적 결격 사유가 없는 고위 공직자의 요구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기준이라서? 어쩌면 그와는 반대로, 혹시 결격 사유가 있는 자에게만 고위직의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닐까? 이언 매큐언의 소설 <결백한 자>는 베를린에서 우발적으로 민간인을 살인한 영국 첩보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범죄를 수습할 방법을 고민한 끝에 시체를 미군 비밀기지에 유기하고 러시아에 비밀기지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팔아넘긴다. 러시아는 첩보전의 승리가 시체의 발견으로 복잡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미국은 서방 첩보계의 명예가 민간인 살인으로 더럽혀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암묵적 합의 아래 이 살인 사건을 조용히 덮어 버린다. ‘불법의 공동체’의 일원이 된 대가로 개인적 범죄에도 ‘결백’이 주어진 것이다. 매큐언은 냉소적으로 이 상황을 ‘위대한 침묵’이라고 표현했다. 비슷하게 김용철 변호사는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통해 삼성의 경영 체제에서 기득권의 자격은 윤리적 결함이 명백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진단했다. 결함을 저당잡혀 무언가를 얻은 이들은 스스로를 먼저 고발하지 않고는 체제를 고발하지 못한다. 따라서 윤리적 결함을 공유하는 집단은 정직한 새 구성원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결함투성이의 공모자를 원한다. 정직한 구성원은 유혹과 설득에 실패하면 내부고발자로 전향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무 능력자보다 편법과 로비의 능력자가 우대받고, 구성원들은 이 불법의 공동체에 끼기 위해 경쟁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새 정권 들어 총리 지명자들이 윤리적 결함으로 줄줄이 낙마했는데도 정부가 여전히 똑같은 의혹을 받는 후보를 내세워야만 한다면, 총리 내정에도 ‘불법의 공동체’ 이론이 강력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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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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