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0년대 후반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급식을 경험했다. 지금처럼 지자체가 실시하는 급식 제도가 아니라 개별 학교가 용역을 주는 수익사업이었다. 반찬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형편없었다. 식판 위에 배추김치, 깍두기, 부추김치, 김치찌개가 오른 날도 있었다. 같은 반찬이 이틀 연속 나오면 학생들은 당연하게 어제 남은 재료려니 여겼다. 급식비와 같은 가격으로 학교 앞 식당들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돈까스, 양송이볶음밥 등이 있었고 중국집에서는 간짜장 혹은 볶음밥 곱빼기를 주문할 수 있었다. 도시락 업체에서는 더 싼 값에 돈까스, 치킨, 불고기가 나오는 도시락을 팔고 있었다. 학생들이 이탈하자 학교는 점심시간이 시작되면 거대한 철문을 걸어 잠갔다. 더 좋은 식사를 찾아 담을 넘어 월경했던 학생들은 체벌을 당했다. 급식 반찬에서 쥐며느리가 나왔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깍두기 사이에서 튀어나왔다는 소리도 있고 된장국 위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는 소리도 있었는데 목격자와 실체는 분명치 않았다. 학교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헛소문을 유포하는 학생을 색출해 엄벌하겠다고 경고했지만, 급식을 먹느니 단식을 하겠다는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어느 날 생물 교사가 가느다란 다리가 잔뜩 달린 벌레를 담은 시료용 샬레를 들고 전 학급을 순회했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쥐며느리로 오인한 바다생물이다.” 그는 자못 학구적으로 느껴지는 조근조근한 말투로 이 바다생물의 학명까지 학생들에게 가르쳐줬다. 그 곤충은 젓갈류에서 종종 발견되는 것으로 먹어도 인체에 전혀 무해하며, 역사적으로나 건강학적으로나 많은 곤충이 식용되어왔다는 것이었다. 그의 강의가 끝났을 때 교실은 고요했다. 교실 뒷자리에서 외마디 야유가 터졌고 곧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먹어라, 먹어라, 먹어라…….” 생물 교사는 결국 벌게진 얼굴로 아이들을 줄 세워 체벌한 뒤 벌레가 담긴 샬레를 들고 다음 교실로 넘어가서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희랍 어원으로 갈색의 순례자란 뜻인 ‘페리플라네타 브루네아’라는 낭만적인 학명을 가진 곤충도 있다. 그렇다고 바퀴벌레를 먹는 게 꼭 낭만적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 이야기는 내 경험담이며 만들어낸 우화가 아니다. 하지만 우화란 게 꼭 순수한 창작물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특히 언론이 침몰한 세월호에서 탑승객 전원이 구출됐다고 보도하고, 국무총리실에서는 메르스 확산 경로를 비밀로 한 채 메르스가 확실하게 통제 가능하다는 담화문을 발표하며, 국정원 요원이 내국인 사찰은 없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결하는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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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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