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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30 21:18 수정 : 2016.05.30 21:18



며칠 전에도 또 겪었다. 택시에 타서부터 내릴 때까지 운전사가 아무 말도 안 하는 상황. 내가 먼저 ‘어디 갑시다’ 하고 행선지를 밝혔다. 운전사가 ‘예’라는 말 정도는 할 성싶은데 아무 답이 없었다. ‘손님 안 잡히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화가 났나?’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괜히 먼저 말을 걸었다. “미세먼지가 사라지니까 참 좋네요.” 역시 아무 답이 없었다. 뒷좌석에 앉은 탓에, 백미러로 보이는 운전사 얼굴의 색안경 탓에,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택시 내릴 때,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여전히 그는 침묵했다.

그날 만난 친구에게 이 얘길 했더니, 그 친구도 여러번 겪은 일이라고 했다. 한번은 화가 나서 택시에서 내릴 때 “입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하는 혼잣말을 크게 하고는 문을 ‘쾅’ 세게 닫아버렸단다. 돌이켜보니 4~5년 전부터 그런 일이 잦았다. 언젠가, 침묵하는 택시운전사에게 따지듯 물었다. “제가 뭐 잘못했나요?” 상대방의 대답은 짧았다. “예? 아뇨.” 그러곤 또 침묵…. ‘이 사람은 확신범이구나. 이 침묵엔 뭔가 이유가 있구나.’ 택시운전사의 여건이 열악한 데 대한 시위의 일환으로, ‘승객에게 침묵으로 일관하자’고 운전사들끼리 결의한 게 있나? 얘기를 살갑게 잘 하는 운전사를 만났을 때, 그에게 물었더니 “택도 없는 소리”란다.

‘감정노동’은 표정이나 말투 등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일의 한 부분을 이루는 노동이라고 한다. 감정 표현 자체가 일인 만큼 감정이 자연스럽게 안 나오면 만들어서라도 내야 한다. ‘감정노동’이라는 용어를 만든 앨리 러셀 혹실드는 <감정노동>에서, 고객을 향한 진심어린 (것처럼 보이는) 미소를 연기하면서 ‘거짓 자아’에 몰두하다 보면, 위험한 상태를 미리 알려주는 분노나 공포 같은 감정의 신호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경고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에서 감정노동자가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까지 하는 일이 벌어진 지 오래다.

그럼 감정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실드는 일과 자신을, 연기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별하라고 한다. ‘자아’와 ‘배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로부터의 ‘건전한 소외’를 택하면 가끔씩 일을 열심히 안 한다는 자책을 할지는 몰라도 자신을 쇠진시키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감한다면 소비자들은? 감정노동자의 연기가 가짜 같고 후져도, ‘어차피 연기’라고 이해하거나 연연해하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일 거다. 내 집 근처 커피체인점의 한 여종업원은 ‘11번 고객님, 주문하신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라고 말할 때, 위아래로 춤추는 억양이 듣기 거북할 만큼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하지만 그 부자연스러움이, 연출된 감정으로부터 진짜 감정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아닐까. ‘화장실 왼쪽에 있으십니다’ 같은 엉터리 존댓말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그럼 택시운전사의 침묵도 그런 방어막?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허먼 멜빌이 쓴 <필경사 바틀비>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변호사에게 필경사로 고용된 바틀비는 언젠가부터 변호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간다.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결국 구치소에서 굶어죽는다. 바틀비가 왜 그러는지, 소설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당혹스럽다. 자본주의, 지시와 저항 같은 거창한 개념 이전에 일해서 먹고산다는 인류 생존의 기본 상식까지도 의심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수동성. ‘왜 저럴까?’ 하는 궁금함이, 옳고 그름에 대한 따짐을 압도해버릴 만큼 크다고 할까. 택시운전사들의 침묵이 그렇게 다가온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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