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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13 17:54 수정 : 2017.09.13 19:54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아시아 탈식민주의 권위자인 대만 학자가 있다. 그는 식민과 냉전으로 점철된 아시아를 극복하고, 탈식민적 민중과 지식의 복원을 위한 학술적·정치적 운동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모두 그를 따랐고 존경했으며, 그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에 감탄했다. 하지만 점점 더 고민이 깊어간 그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시작한다. 상식과 금기를 넘어서는 그의 말에 당황한 모두는 이제 그가 미쳤다고 쑤군거린다. 맞다. 어쩌면 그는 정말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이 세계를 무너뜨리고, 그 너머의 또 다른 세계에 다가가는 것이니까. 여전히 이 세계에서 허용된 것만 말하고, 그 언어의 감옥에서 제한된 생각만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의 언어는 낯설고 위험하다.

북핵 위기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갑자기 그를 떠올린 이유는 지금 이 세계의 언어와 사고로는 결코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비관에 근거를 둔다. 사실 우리는 서로를 속이고 있다. 마치 너무 급박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면 그 현실을 도피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안식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반도 비핵화, 전술핵과 대북제재, 혹은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등 미사여구로 포장된 전략과 방안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현실적이며 궁극적인 해결책은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어영부영하던 사이에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었고, 중국은 압도적으로 강해졌으며 러시아는 극동지역 영향력 확장에만 골몰한다. 한국 사회가 맹신적으로 의지하며 믿어왔던 미국은 ‘이해 불가능한’ 집권자가 허풍을 쏟아내고 있으며, 일본은 이 국면을 이용해서 ‘보통국가’가 되고자 한다. 사방의 큰 힘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 정부는 ‘운전자론’을 내세우며 운신의 폭을 넓히려 하지만, 그것 또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협력은 고사하고 북한과의 대화 채널은 깡그리 막혀 버렸으며, 안보 위기를 놓칠세라 국내 보수 세력들은 너무나도 쉽게 전쟁과 핵을 들먹거리며 열세에 몰린 자신들의 세력 규합만 생각한다.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상황이 영속될 수도 있으며, 그 속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는 이곳에서 살아야만 하는 민중, 바로 ‘우리’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냥 비관하며 진영과 이념으로 편을 갈라 상대방을 탓하며 ‘운명’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의 세계에서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이 세계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을 시도라도 해야 할 것이다. 상식과 금기를 뛰어넘는 ‘미친’ 사고로 지금의 이 국면에 틈새를 만들어내야 한다.

말할 수 있는 것, 상식적인 것, 그리고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 안전한 영역에 머물러서는 결코 지금의 국면을 전환할 수가 없다. 그 시작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그 경계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가 사실은 냉전과 분단이라는 언어로 구성된 제한된 세계라는 것을 간파해야 한다. 말할 수 있는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우리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미쳤다’고 손가락질당할 것이다. 이상주의자라고 폄하될 것이다. 아무도 듣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금지를 넘는 ‘미친’ 상상력만이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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