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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2 15:25 수정 : 2014.07.22 15:59

지난 5월 1일 베를린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에서 노동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한겨레DB

한국사회 좌표, 독일서 찾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단장에겐 싱거웠던 독일의 집회
노동절 집회조차 가족과 시민이 함께하는 축제로 여겨
“강한 시스템 속에서 파업…불이익이나 구속·해고 없어”

“독일의 파업 현장에 가면 우리나라처럼 ‘격렬함’과 ‘비장함’을 찾을 수 없어요. 노동절 집회도 가족과 시민이 함께하는 축제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너무 과격한 걸까요?”

이주호(50)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에게 독일의 집회 현장은 너무 ‘싱거웠다’. 파업 현장에 가봐도,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서 연설을 듣거나 깃발과 피켓을 흔들며 거리 행진을 할 뿐이다. 단식·삭발·고공농성과 같은 ‘극단적인’ 항거나 경찰과의 대치는 찾을 수 없다. 겉모습만 비교해보면, 한국 노조의 ‘과격함’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 이 단장은 독일 산별노조의 강력한 힘, 노동자와 노동기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제도와 분위기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 단장은 의료복지 현장에서만 20년을 일해 온 잔뼈가 굵은 노동운동가다. 지난해 10월부터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선발하는 국제 노조간부 교육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해 독일에 머물고 있다. 국제노동대학이 주관하는 석사과정에서 연구하면서 국제적인 노동현장과 집단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의료복지와 노동 연구를 위해 여러 차례 독일을 방문했던 그의 가장 큰 화두는 산별노조다.

산별노조, 노동자를 지키다

“독일에선 산별노조라는 강한 시스템 속에서 파업이 이뤄지고, 파업에 대한 불이익, 구속이나 해고가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연금, 건강, 고용, 산재보험 등이 탄탄히 깔려있고, 현장에서는 노사공동결정제도 등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기업별 노조가 기본인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산업별로 노조가 조직돼있다. 교통, 병원, 전기, 교육, 금융, 언론, 공무원과 공공사회서비스 등이 직종을 뛰어넘어 하나의 노동조합을 꾸려 전국적으로 노동자를 대표한다. 인력과 예산 등 규모 면에서 기업노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 단장은 “예컨대 독일의 통합서비스노조인 베르디(Ver.di)는 조합원이 210만 명, 본부 상근자만 800명, 10여 개의 연수원, 일 년 예산은 수천억에 이른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노동자의 힘을 모으고 사회적 발언권을 키운다”라고 말했다.

독일은 산별 교섭을 통해서 ‘동일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지키고 있으며, 노동시장과 경제정책에 적극 개입한다. 현장에는 노동자도 기업의 인수합병, 인력 등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노사공동결정제도가 있다. 최근 독일 연방의회에서는 노조들이 저임금, 이주,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온 최저임금 시급 8.5유로(약 1만2000원)가 통과돼 곧 시행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조가 기업별로 나눠져 있고, 그 결집체인 민주노총, 한국노총도 각각 70만, 80만 명에 불과합니다. 노사 협상은 물론 사회적으로 노동자의 발언권이 약할 수밖에 없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노동 운동은 투쟁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고 공권력의 투입과 구속, 해고 등 탄압에 맞서면서 더 격렬하게 진행됩니다.”

독일의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보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가 쉽다. 국민에게 우리나라 노조는 소속된 기업 안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가끔 과격한 파업으로 ‘실력행사’를 하는 조직으로도 그려진다. 귀족노조로 비판받기도 한다. 이 단장은 “기업별 노조의 활동은 기업 내 노동자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생각에 제 3자의 공감대를 얻기 힘들지만, 산별노조는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 산업 전체의 노동자를 대변하면서 사회 전체의 공감대를 얻기가 더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노조는 자신의 직업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해고자 조합원 문제로 법외노조가 된 한국 전교조의 사례는 상상할 수 없다. 독일 산별노조에는 비정규직, 실업자, 은퇴자, 이주노동자, 학생까지 다 조합원으로 활동한다. 금속노조(IG Metall)의 경우 이들의 비율이 40%에 이른다. 경찰과 소방관, 의사도 노조를 만들어 활동한다. 독일은 이 산별노조의 힘으로 독일 사회에 노동자 친화적인 제도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지난 삼월 독일 최대 병원인 샤르테 병원 노동자들이 인원확충 등을 요구하며 진행한 경고파업에서 지지 연대 발언을 하고 있는 이주호 단장. / 한겨레DB

“노동은 독일사회의 기본원리”

“독일에서 노동자는 산별노조와 정당, 재단을 통해서 노동 현장과 정치, 정책 형성과정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요”

독일 노조는 정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의 뿌리는 독일노동자연맹이었다. 이 단장은 “오늘날 독일 복지사회는 노동운동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며 “지금도 사민당, 좌파당원의 약 40%, 사민당, 좌파당 국회의원 절반이상이 조합원이라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노동운동과 정치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면서 독일사회를 이끌어온 셈이다. 독일 노조는 재단을 통해서도 사회적인 힘을 발휘한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은 독일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한스 뵈클러재단’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사민당의 싱크탱크인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FES)’과도 활발히 협력한다. 이런 재단들은 독일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고 정책 연구를 하면서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이 단장은 “독일에서는 노동과 노조란 것이 한국처럼 왜곡되어 왜소화된 한 부분이 아니라 독일 사회를 떠 받치는 기초이자 기본 원리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독일에서 노동과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돈보다 생명이 우선시되는 사회를 희망하는 그는 현재의 독일을 부러워하기보다는 그런 독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과정과 원동력에 더 관심이 많다. 그는 현장에 기반한 산별노조운동의 활성화를 한국 노동운동의 첫 과제로 꼽는다. 노동이 제대로 서야 힘있는 야당과 진보정당이 나올 수 있고, 강한 야당과 진보정당은 독일식 정당명부투표제도를 통해 정치적 새판짜기를 해야한다고 보는 것이다. 독일식 재단설립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한국도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을 위해서 70년 전통의 한스 뵈클러재단 같은 노동의 싱크탱크가 필요해요. 그곳에서 긴 호흡으로 대안을 만들고 사람을 키우는 정책개발, 자료 축적, 교육, 장학 사업 등을 해야 합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변화와 함께 시민들의 ‘노동자’라는 자각도 필요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점은 24시간 문을 열어야하고, 주말에도 콜센터를 운영해야 해요. 독일에서는 상점, 관공서 등이 일찍 문을 닫아요. 크리스마스 전후로 상가가 전면 철시하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퇴근 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법적으로 보장된 6주간의 긴 휴가를 떠납니다. 이 ‘칼 같은’ 업무시간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만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존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노동자 아닌가요.”

베를린/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heyday1127@gmail.com

최혜정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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