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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베를린에서 열린 노동절 행사에서 노동자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한겨레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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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좌표, 독일서 찾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단장에겐 싱거웠던 독일의 집회
노동절 집회조차 가족과 시민이 함께하는 축제로 여겨
“강한 시스템 속에서 파업…불이익이나 구속·해고 없어”
“독일의 파업 현장에 가면 우리나라처럼 ‘격렬함’과 ‘비장함’을 찾을 수 없어요. 노동절 집회도 가족과 시민이 함께하는 축제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이 너무 과격한 걸까요?”
이주호(50)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에게 독일의 집회 현장은 너무 ‘싱거웠다’. 파업 현장에 가봐도,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서 연설을 듣거나 깃발과 피켓을 흔들며 거리 행진을 할 뿐이다. 단식·삭발·고공농성과 같은 ‘극단적인’ 항거나 경찰과의 대치는 찾을 수 없다. 겉모습만 비교해보면, 한국 노조의 ‘과격함’이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났을까. 이 단장은 독일 산별노조의 강력한 힘, 노동자와 노동기본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제도와 분위기를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 단장은 의료복지 현장에서만 20년을 일해 온 잔뼈가 굵은 노동운동가다. 지난해 10월부터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선발하는 국제 노조간부 교육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해 독일에 머물고 있다. 국제노동대학이 주관하는 석사과정에서 연구하면서 국제적인 노동현장과 집단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의료복지와 노동 연구를 위해 여러 차례 독일을 방문했던 그의 가장 큰 화두는 산별노조다.
산별노조, 노동자를 지키다
“독일에선 산별노조라는 강한 시스템 속에서 파업이 이뤄지고, 파업에 대한 불이익, 구속이나 해고가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연금, 건강, 고용, 산재보험 등이 탄탄히 깔려있고, 현장에서는 노사공동결정제도 등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기업별 노조가 기본인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은 산업별로 노조가 조직돼있다. 교통, 병원, 전기, 교육, 금융, 언론, 공무원과 공공사회서비스 등이 직종을 뛰어넘어 하나의 노동조합을 꾸려 전국적으로 노동자를 대표한다. 인력과 예산 등 규모 면에서 기업노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이 단장은 “예컨대 독일의 통합서비스노조인 베르디(Ver.di)는 조합원이 210만 명, 본부 상근자만 800명, 10여 개의 연수원, 일 년 예산은 수천억에 이른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노동자의 힘을 모으고 사회적 발언권을 키운다”라고 말했다.
독일은 산별 교섭을 통해서 ‘동일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지키고 있으며, 노동시장과 경제정책에 적극 개입한다. 현장에는 노동자도 기업의 인수합병, 인력 등 주요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노사공동결정제도가 있다. 최근 독일 연방의회에서는 노조들이 저임금, 이주, 비정규 노동자들을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온 최저임금 시급 8.5유로(약 1만2000원)가 통과돼 곧 시행을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조가 기업별로 나눠져 있고, 그 결집체인 민주노총, 한국노총도 각각 70만, 80만 명에 불과합니다. 노사 협상은 물론 사회적으로 노동자의 발언권이 약할 수밖에 없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노동 운동은 투쟁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고 공권력의 투입과 구속, 해고 등 탄압에 맞서면서 더 격렬하게 진행됩니다.”
독일의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보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가 쉽다. 국민에게 우리나라 노조는 소속된 기업 안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가끔 과격한 파업으로 ‘실력행사’를 하는 조직으로도 그려진다. 귀족노조로 비판받기도 한다. 이 단장은 “기업별 노조의 활동은 기업 내 노동자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생각에 제 3자의 공감대를 얻기 힘들지만, 산별노조는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 산업 전체의 노동자를 대변하면서 사회 전체의 공감대를 얻기가 더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노조는 자신의 직업과는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해고자 조합원 문제로 법외노조가 된 한국 전교조의 사례는 상상할 수 없다. 독일 산별노조에는 비정규직, 실업자, 은퇴자, 이주노동자, 학생까지 다 조합원으로 활동한다. 금속노조(IG Metall)의 경우 이들의 비율이 40%에 이른다. 경찰과 소방관, 의사도 노조를 만들어 활동한다. 독일은 이 산별노조의 힘으로 독일 사회에 노동자 친화적인 제도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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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월 독일 최대 병원인 샤르테 병원 노동자들이 인원확충 등을 요구하며 진행한 경고파업에서 지지 연대 발언을 하고 있는 이주호 단장. / 한겨레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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