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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29 23:08 수정 : 2014.07.29 23:08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의 사회통합 과정에 주목해온 이희영 대구대 교수(사회학)의 말은 단호했다. 이 교수는 1994년부터 10년간 독일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며 통일 직후 독일의 사회 변화, 통합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heyday1127@gmail.com

한국사회 좌표, 독일서 찾다
동·서독 사회 통합 과정 주목해온 이희영 교수 인터뷰
“독일의 현재는 우리에게 더욱 ‘가혹하게’ 닥칠 미래일 수도”

“(통일 이후에도) 동서독 문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서독 문화라는 지배 담론에 묻혀서 입밖에 꺼내지 않는 ‘금기’가 되었을 뿐이죠.” 독일 통일 이후 동서독의 사회통합 과정에 주목해온 이희영 대구대 교수(사회학)의 말은 단호했다. 이 교수는 1994년부터 10년간 독일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며 통일 직후 독일의 사회 변화, 통합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이런 사회통합에 대한 관심은 한국으로 자연스레 옮겨졌다. 동서독 간에 나타나는 지배 담론의 문제는 탈북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교수는 남한의 지배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탈북자들의 삶의 여정을 연구하고 있다.

독일 통일 25년을 앞둔 현재, 독일의 사회 통합은 시험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닥칠 미래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전망이다.

서독에 ‘지배’된 사회, 묻혀진 갈등 독일 연방정부가 독일 통일 20주년을 맞아 지난 2010년도에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동독 주민과 서독 주민의 구조적 불평등은 여전히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교수는 “동독 지역 주민들의 평균적인 사회적 지위가 낮고, 임금은 서독 임금의 77%에 불과하다”며 “누구도 공론에서 동서독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지만, 명백한 사회적 문제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동서독의 문제’는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이 교수는 지배 담론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독문화가 주류인 사회에서 동독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문화를 공적 영역에서 말하지 못합니다. ‘게으르고 찌질한’ 동독 출신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콤플렉스가 되는 거죠. 성적 소수자가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요.”

이 교수는 “모든 동독 시절의 경험은 이념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그 시절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며 “현재 독일의 역사 교과서도 통일 독일을 서독의 흐름에서 서술하면서, 동독은 별도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최근에서야 일부 학자들에 의해 동독 체제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독일 교육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온종일 학교’(방과 후 학교)를 예로 들었다. 부모의 아이 양육과 사회 활동의 양립을 위한 이 제도는 이미 동독에서 시행했던 제도였다. 반면 서독에서는 오래된 ’3K‘라는 전통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교회, 부엌, 그리고 아이의 독일어 첫 글자를 딴 말로, 여성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뜻이다. 적어도 여성들의 사회 활동에 대한 배경과 인식은 동독이 더 앞서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미 동독 시절에 존재했던 것을 통일 당시에는 무시하고, 지금에서야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논의 중”이라며 “동독의 경험을 재평가하고, 동독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역사가 정당하게 평가되는 경험을 가지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동서독 주민들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첫 번째 일이라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이런 사회통합에 대한 관심은 한국으로 자연스레 옮겨졌다. 동서독 간에 나타나는 지배 담론의 문제는 탈북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교수는 남한의 지배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탈북자들의 삶의 여정을 연구하고 있다.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heyday1127@gmail.com
우리 안의 소수자, 남한을 떠나는 탈북자 동서독 간에 나타나는 지배 담론의 문제는 탈북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교수의 관심이 동서독 통합에서 남북관계의 탈북자 문제, 사회의 ’비주류‘ 문제로 확대된 이유다. 이 교수는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무언의 압력을 받는다”면서 “자신의 고향인 북한을 두고 반공주의, 극우 보수주의가 돼야 한다는 심리적 갈등이 심하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 탈북자는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사람일 뿐, 이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나 사고방식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 이 때문에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의 문화와 규칙에 과도하게 적응하려 하거나, 차별과 멸시에 지쳐 또다시 국경을 넘는다. 이 교수는 지난해 9월부터 베를린자유대 방문 교수로 있으면서 해외로 이주한 탈북자들을 만났다. 독일의 난민 숙소에서 난민 신청을 한 탈북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지원을 받으면서 정착을 준비하는지 살폈다. 탈북자들이 언어의 장벽에도 남한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하는 이유는 명백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멸시 받고 사느니 말 안 통하는 곳이라도 멸시를 안 받고 살고 싶다는 겁니다. 외국에서는 외모도 확실한 차이가 있고, 언어도 처음부터 배워야 하지만,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에게 무시당하며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교수는 “탈북자들은 하나원 교육을 받고 임대주택을 배정받으면 그 이후부터는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며 “가끔 전화해 ’잘 있느냐‘고 물어보는 형사들만 한 명씩 붙여놓지 이들이 남한 사회에 녹아들어 적응할 수 있는 지원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를 구 동독 주민들의 ’전망 부재 상태‘와 비교했다. 과거 동독 주민들은 통일 직후 어떻게 학교에 가고, 어떻게 직장을 구해야하는지 등 서독 사회에 대한 지식을 알 수 없었다. 제도를 모르니 장기적인 계획도 세울 수가 없고, 결국 단순 노동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통일 이전 비교적 평화로운 교류가 있었던 동서독의 상황도 이런 데, 전혀 교류가 없고 서로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남북의 상황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남한의 지배문화 안에서 탈북자들이 정착해 적응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이미 탈북자들 사이에 ’남한에서 살기가 힘들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남한을 거치지 않고 바로 복지 제도가 잘 돼있는 유럽으로 향하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난민 신청을 한 탈북자들은 난민으로 인정 받을 때까지 정해진 숙소에서 지원금을 받으며 생활한다. 사회복지사가 이들의 생활을 살피고, 독일어를 배우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것을 도와준다. 이 교수는 ’돌봄 가정‘을 만난 한 탈북자 이야기를 소개했다. 현지 독일인 가정과 일 대 일로 관계를 맺고 가족의 일원이 돼서 도움을 받는 지원체계다.

“그 집 아이들에게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 가정의 문화를 배웁니다. 기계를 고치는 일 등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도와주면서요. 이 독일인 가족들도 탈북자를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고 대우해요. 탈북자뿐만 아니라 이 가족도 이주민의 문화를 배워가는 거죠.” 혈통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지원책을 시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이 교수는 “탈북자 뿐만 아니라 이주민 등 모두가 동등한 사회의 일원이며, 그들뿐 아니라 우리도 그들의 문화와 경험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에 대한 한국 사회의 준비가 거창하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북한 출신 주민들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고 소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베를린/글·사진 이유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heyday11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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