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29 18:27
수정 : 2014.09.2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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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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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모어이자 모국어 삼은 글쟁이인 나는 한국어가 가진 아름다움에 가끔 황홀하다. 최근엔 형용사, 부사 사용을 줄인 주어, 동사 구조의 간단명료한 문장 선호가 대세지만, 나는 형용사, 부사의 풍성함이 한국어의 중요한 장점이라 생각한다. 글쟁이로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높임말 체계이다. 말과 글이 사유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큰데, 한국어의 높임말 과잉은 권위적 사회 분위기와 내통한다는 느낌이다. 청소부를 청소부님이라 하지 않으면서 국회의원을 국회의원님이라 불러야 안심하는 내면엔 사회경제적 권위에 기댄 ‘높임/낮춤’의 등급화와 개인을 대하는 비민주적 불평등성이 있는 것 아닐까. 좋은 사람들과 있을 때 나는 대개 말을 편하게 쓴다. 내가 누군가에게 한결같이 깍듯한 높임말을 쓴다면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내 거부의사이기도 하다. 유난히 문법이 복잡한 한국어의 과잉존대는 왜곡된 권위의식을 부채질하고 일상의 민주화를 방해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예의를 갖추되 편안한 말이지 문법에 경직되게 갇힌 말이 아니다. 권위적 사회의 허위가 심할수록 관습에 복종하지 않는 말, 자기를 잘 사랑하는 말이 중요하다. 평생 우리 말글을 보듬어온 이오덕 선생도 “우리말에는 높이거나 낮추는 말의 등급이 많은 것이 문제다. 될 수 있는 대로 높임말을 적게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말했다’와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이에서 한국어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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