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23 18:33
수정 : 2014.11.23 18:33
|
김선우 시인·소설가
|
막 등단한 이십대 시절, 서울 변두리 아주 낡은 아파트에 세 들어 산 적 있다. 어느 날 새로 이사 온 위층 사람들이 주말 밤마다 삐거덕거리는데, 층간소음이 너무 심했다. 밤부터 새벽까지가 원고작업 피크인 나로선 그 소음이 몹시 성가셨다. 올라가 조심 좀 하자고 이야기할까 망설이던 어느 날, 위층 사람들과 계단에서 딱 마주쳤다. 한눈에 봐도 가난한 신혼부부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주말 밤마다 삐걱거리는 소음이 바로 저 신혼부부의 낡은 침대 소리라는 것을. 사랑 앞에 무량한 응원자인 나는 그날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싸우고 욕하고 던지고 깨는 소리도 아니고 사랑을 나누는 소리인데 내가 참자!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으니 가끔씩 침대 소음이 들리지 않는 주말이면 오히려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난해도 알콩달콩 지켜가는 사랑이었으면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그 집에서 이사 나오던 날, 윗집 부부에게 뭔가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 무렵 가진 게 책밖에 없던 나는 그 집 우편함에 시집 한 권을 꽂아주고 왔다. 자크 프레베르의 시집이었다. 읽고 있으면 쿡쿡 웃음이 나는 다정한 시 몇 편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신은’이라는 제목의 시처럼. “그리고 신은/ 불시에 아담과 이브에게 나타나/ 이르되/ 부디 계속하라/ 나 때문에 방해받지 말고/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하라” 프레베르의 유연하고 따뜻한 유머가 이 겨울 가난한 연인들의 활력소가 되기를!
김선우 시인·소설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