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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24 18:38 수정 : 2014.11.24 18:38

김선우 시인·소설가


몇 해 전 이사한 아파트엔 ‘좀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들 대부분이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사한 다음날 위층이 아주 소란스러웠다. 부인의 악다구니에 남편의 목청이 고래고래 겹치고 뭔가 깨지는 소리마저 들려 심란한 아침으로 새집 신고식을 치렀다. 그 후로 사나흘에 한번꼴로 비슷한 소란이 일었다. 부부싸움 끝에 부인의 우는 소리까지 들리는 날이면, 온종일 우울했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 때 하염없이 점잖아 보이는 노부부가 당사자들이란 게 놀라울 뿐이었다. 그들은 아랫집 사람이 자신들로 인해 겪는 고통을 어렴풋하게라도 알고 있을까. 한 달가량 참던 나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어느 날 활짝 핀 국화 분을 사가지고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래층에 이사 온 사람인데요. 이웃에 어른들이 계셔서 든든합니다. 이건 이사 떡도 못 돌리고 해서, 떡 대신 가져온 꽃이에요. 이뻐서 사와 봤어요. 그럼….” 민원을 대신한 인사라고나 할까. 그날 이후 신기하게도 층간소음이 아주 심하다 싶은 날은 사라졌다. 내 의도를 완벽하게 실현시켜준 건 꽃의 힘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세상에 짜증내는 꽃은 없고, 나는 왜 피었을까 자책하며 불행해하는 꽃은 없다. 모든 사랑에도 피는 이유가 있고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부부에게 꽃이 통했다는 사실이 즐거웠지만, 그보다도 노부부의 시든 사랑이 꽃처럼 다시 피어나기를 바랐다.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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