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11.26 21:10 수정 : 2014.11.26 21:10

김선우 시인·소설가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무효확인 소송을 파기환송한 날 쌍용차 주가가 뛰었다. 끔찍한 천민자본주의, 라고 나는 씹어뱉었다. 한술 더 떠 정부에선 이제 대놓고 정리해고를 쉽게 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사회 전반에 걸친 자본과 물신에의 노예화는 끝없고, 정리해고를 통한 기업의 노동자 살해는 이제 더욱 뻔뻔해질 태세다. ‘천민’이라는 말이 태생적으로 가진 신분의식 때문에 나는 천민자본주의라는 말을 싫어한다. 그런데 이 나라의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물신의 노예임을 가장 천박한 행위로 증명해 보여준다. 급기야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모욕적인 대우를 견디다 못한 경비노동자가 자살하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아파트 명예가 훼손됐다며 경비노동자 전원을 해고했다는 소식이 들리는 실정이다. 아, 천하구나. 당신들. 이러지 마라.

부르주아의 가식과 탐욕을 신랄하게 조롱하는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에서조차 적어도 투명마지노선이 있다. 일상이 허위의식에 가득 찬 것일지라도 인간인 이상 ‘척이라도 해야’ 하는 부르주아들이 거기엔 있다. 그런데 한국의 부르주아들에겐 그마저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부끄러움 없이, 비인간성의 극점에서, 이보다 더 천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노골적인 탐욕에 예속된 물질의 노예들로서, 인간의 품격에 대해 이토록 무지한 이 지독한 부르주아 천민의 선정적 유혹 너머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대체 어떤 세상일까.

김선우 시인·소설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선우의 빨강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