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4.05 19:23
수정 : 2015.04.0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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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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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나비를 보았다. 라일락 가지를 탐색하는 나비를 보는 일이 즐거웠다. 온전히 이 가지를 탐하고 저 가지에 도착한 나비는 온전히 저 가지에 몰두한다. 서두름 없이 우아한 나비의 움직임. 나비는 헉헉거리지 않고 다급하지 않으며 하늘하늘 허공을 노 젓듯이 일정하게 움직인다. 나비의 속도란 이런 것이라는 듯, 연속되는 가붓한 접속! 나비를 볼 때 가끔 장주가 떠오른다. ‘길이 없음’에 접속완료한 자만이 ‘자신의 길’에 접속한다. 길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면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루쉰의 희망론이 젖줄을 대고 있는 장자의 ‘도행지이성’은 시공을 훌쩍 건너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의 ‘내가 춤출 수 없으면 나의 혁명이 아니다’에 접속한다. 춤추듯 온전히 백 퍼센트 몰입하는 순간들이 모여 혁명이라는 길을 만든다. 당나라 때 대주혜해 선사의 일화가 떠오른다. 한 율사가 대주선사에게 물었다. ‘스님도 도를 닦기 위해 노력하십니까? / 그렇지.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잔다네. / 그거야 모든 사람이 다 하는 일 아닙니까? / 그렇지 않네. 사람들은 밥 먹을 때 오로지 밥만 먹지 않고 이것저것 요구가 많고, 잠잘 때 잠만 자지 않고 온갖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지.’ 잡념 없이 백 퍼센트 밥 먹고 잠잘 땐 백 퍼센트 잠자기. 슬픈 일에 백 퍼센트 슬퍼하고 즐거운 일에 백 퍼센트 즐거워하기. 백 퍼센트의 순간이 많은 인생이라면 자기가 만들어온 길이 등불처럼 영혼을 인도하겠지. 봄날 나비의 백 퍼센트 날갯짓처럼!
김선우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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