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빨강] 척하지 않기

김선우 시인·소설가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비범한 쾌락주의자들이라는 거다. 타인을 위해 자신이 의미있는 존재일 때 삶이 가장 행복함을 알고 그 앎을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들. 배워서 남 주는 기쁨, 깨달은 것을 나누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선각한 이들은 때로 고난이 닥칠지라도 묵묵히 자기 길을 갔다. 그러니 위대한 인물들을 칭송할 때 흔히 동원되는 희생이니 헌신이니 하는 말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오히려 그들은 생의 가장 큰 기쁨을 열렬하게 추구해간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보통의 존재들인 우리는 직장, 연인, 가족이라는 제한된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좋은 관계의 기본은 ‘진솔함’일 것이다. 진솔함은 ‘척하지 않는’ 태도에 긴밀히 연결된다. ‘행복한 척’에 연결되어 있는 과시욕, ‘교양인인 척’에 연결되어 있는 가식과 허세만 제거해도 삶은 훨씬 담백하고 자유로워진다. 명품이나 자동차 브랜드, 아파트 평수에 저당 잡히는 불행한 삶도 ‘척’에 연결되고 내 자식의 학벌이나 직장이 ‘남 보기 번듯하길’ 바라는 것도 ‘척’에 연결된다. 중요한 건 개인으로서의 행복인데, ‘남 보기 부끄럽지 않은’ 자식을 원하는 부모의 ‘척하는’ 이기심이 자녀를 일찍부터 경쟁의 노예로 밀어넣곤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척하는 욕망’에 사로잡히면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비범한 쾌락주의자로 살기는 어려울지라도 평범한 쾌락주의자로 깨알 같은 행복감을 누리며 살길 원한다면, 척하지 않기!

김선우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