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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7 21:09 수정 : 2014.10.27 21:09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올해 노벨평화상은 파키스탄의 소녀 유사프자이(17)와 인도의 사티아르티(60)에게 돌아갔다. 앙숙 사이인 파키스탄의 무슬림과 인도의 힌두교인이 공동수상했다는 게 초점이다. 힌두교가 주류인 인도와 무슬림 국가 파키스탄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분리돼 접경 카슈미르에서 두번이나 전쟁을 치르고 뭄바이 등 대도시에서도 크고 작은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분쟁의 애초 기획자는 식민 지배를 쉽게 하려던 제국주의 영국이었다. 자기들끼리 싸워 진짜 큰 적엔 대항할 수 없게 하는 ‘분리 지배’(devide and rule) 전략이다. 분열책의 목표는 내부 균열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친 이들이 누군가. 지배자인 로마인들이 아닌 동족 유대인들이었다. 힌두-무슬림 화해 통일을 위해 헌신한 간디를 죽인 것도 파키스탄 무슬림이 아닌 인도의 극우 힌두교인이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자치를 허용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라빈 이스라엘 총리의 암살자도 팔레스타인 무슬림이 아니라 극우 유대인이었다.

얼마 전 방인성·김홍술 목사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껴안고 40일간 단식한 광화문 농성장엔 이른바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를 자칭한 이들이 와 노란 리본 제거에 나섰다. 서북청년단(서북청년회)은 해방 후 북에서 공산당에게 핍박을 받고 월남해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의 지원으로 설립된 극우청년단체다. 그들이 해방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인 학살에 앞장섰던가. 개신교인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도 같은 개신교인 이승만의 홍위병인 서북청년단원이었다.

그런 분열책은 외부의 기획자에 호응한 내부의 권력자에 의해 집행된다. 전쟁 위기를 고조시켜 국민 생명을 볼모로 정권 안보를 유지하려는 권력자의 조종에 의해 내부를 통합하려는 지도자들은 제거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립은 더해지고, 공동체에 무력감과 패배감이 팽배해진다. 2차 대전 뒤 지구상 대표적인 분쟁지역들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실행된 공통의 모습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분노심을 부추겨 총을 든다. 탈레반이나 이슬람국가처럼. 그러나 상대를 악마화하며 싸우는 사이 자신도 어느새 악마가 되어간다. 이를 간파한 이들이 간디와 비노바 바베였다. 그들은 폭력으로 자기들끼리 싸우다 강자의 먹이가 되고 마는 프로그램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혀 다른 길을 제시했다. ‘사티아그라하’(진리를 향한 전진)다. 이는 누구에게나 내면에 선의가 있음을 발견하기 위해 비폭력적으로 다가가는 희한한 운동이다.

10여년 전 신문사를 쉬고 인도를 순례할 때 비노바 바베 아슈람에 머문 적이 있다. 간디의 권유로 1940년부터 20여년간 ‘부단(토지헌납)운동’을 이끈 비노바와 함께 인도 전역을 걸었던 제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비노바는 기득권을 누리는 지주들을 찾아가서 말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다섯명의 자녀를 두었다면 땅 없는 가난한 농부를 여섯번째 자식으로 여기고 6분의 1의 땅을 내주십시오.”

씨도 안 먹힐 듯한 말을 하며 걸어다닌 비노바는 놀랍게도 스코틀랜드의 넓이만한 땅을 기증받아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도 조금도 나누려 하지 않는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이들에게 비노바는 말했다. “그들의 이기심은 벽과 같다. 그러나 그 벽에도 작은 문이 있다. 벽을 깨고 들어가려 하기보다는 그 작은 문을 찾아 들어가라. 아무리 완고한 성벽에도 문은 있는 법이다.”

석가, 예수, 간디, 김구, 라빈은 그 ‘좁은 문’을 향해 걸어간 이들이다. 그들은 세속적으로 실패했다. 그럼에도 어깨 겯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바로 신앙이다. 철벽처럼 완고하게 보여도 그 안에 태양처럼 신성과 불성이 빛나고 있다는 확신을 안고서 말이다. 그런 성현들에게조차 가슴을 열지 않은 이들은 많았으니, 또 한번 그 철벽에 다가갔다가 실패한다 한들 더 좌절할 것이 없다. 그런데도 지주들에게 가기 전 먼저 가슴을 연 사람은 누구였던가. 비노바 자신이었다. 그러니 오늘 먼저 가슴을 열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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