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깸
‘패가망신’이라는 말이 있다. 가지고 있는 재산과 명성을 다 날리고 이제는 초라하고 쓸쓸하게 나앉은 경우를 말한다. 지혜롭지 못한 판단과 처신으로 소중한 인생을 망친 사연을 듣게 되면 문득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분은 지금 어느 소도시에서 귀금속상을 운영하고 있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평범한 시민이다. 내가 이분의 삶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혜롭게 산다는 일이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시골에서 11남매의 틈에서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맞았다. 학교도 못 가고 끼니마다 밥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시골집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소년은 무작정 서울로 갔다. 최소한 밥은 굶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중국식당에 취직했다. 그때 소년은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내가 사는 길은 오직 정직, 근면, 성실이다. 그러면 주인이 나를 쫓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식당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삶을 바꾼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식당 근처의 금은방 주인이 소년에게 제안을 했다. “너 나하고 일하지 않을래?” 평소 소년의 성실한 모습을 주인은 눈여겨본 것이다. 귀금속과 시계를 팔고 있는 그곳에서 청년이 된 그는 식당에서와는 달리 이런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는 오직 기술을 잘 배워야겠다고. 그렇게 여러 세월 동안 그는 귀금속과 시계에 관한 기술을 익히고 장사의 방법도 터득했다. 어느덧 월급을 착실하게 모은 그는 지방의 소도시에 내려가서 귀금속상을 차렸다. 가게 이름은 자신의 인생철학을 담은 신용당.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가난했던 소년은 참한 연분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두었다. 웃음이 넘치는 나날이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삶의 행적이다. 그런데 평범 속에서 그는 비범한 생각과 다짐을 했다. ‘이제 돈도 벌고 생활도 안정이 되었는데 어떻게 인생을 망치지 않고 보람있게 살 수 있을까?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이제는 먹고살 만한 주변의 친구들을 보니 노름과 주색에 빠지거나 무리한 사업투자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있구나. 나는 패가망신하지 않고 나름대로 사는 재미와 보람을 가져야겠다. 그러자면 책을 읽고 등산을 하고 절을 다니면서 나를 다스려야겠다.’ 지금도 가끔 내게 들러 차담을 나누는 그는 여전히 근면하고 성실하고 헛된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분을 볼 때마다 많이 알기보다 잘 아는 일이 바로 지혜로운 삶이다, 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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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일지암 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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