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21 18:07
수정 : 2016.06.21 19:12
기부금 통계는 집계 방식과 지표가 다양해 일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일정한 표본 대상을 지속적으로 추적 조사하는 ‘패널 연구’ 방식을 사용하는 연구 성과들이 많지 않아 기부 문화 실태 변화 추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도 쉽지 않고, 설문조사에서도 “기부금을 낸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뭉뚱그려져 같이 대비되기도 한다. 개인 기부금, 기업 기부금, 정치 후원금, 종교 헌금 등을 포함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기부금액 통계 역시 큰 폭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어떤 통계에서는, 미국 사람들 중 89%가 기부 활동에 참여하는 데 반해 한국 사람들 중 50%는 기부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있는데, 살기가 더욱 팍팍해지면서 그 수치가 60%로 늘었다는 것이다. 어떤 방식의 기부금 통계로 비교하든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다른 많은 사회들과 비교할 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공감 능력 부족은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여성이나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는 ‘무식’이나 ‘무지’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느 노동운동 활동가가 장애인 활동가에게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서 자본과 권력에 맞서 장애인 동지들과 함께 호통치며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한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사자는 그 얘기를 인터넷 게시판에 소개하면서 자기도 한번 여성운동 활동가에게 “여성 동지들이여, 남자가 되어 자본과 권력에 당당히 맞서서 싸웁시다!”라고 말해봐야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을 하는 이도건 활동가가 국회의사당 근처 이룸센터 2층 유리 처마에 올라가 고공 단식농성을 하다가 14일 만에 내려왔다. “겨우 2층이면서 무슨 ‘고공’이냐?”고 핀잔을 준 사람도 있었다지만 허리를 잘 가누지 못하는 척수장애인에게 2층 유리 바닥은 100층보다 더 높은 곳일 수도 있다. 한여름 태양 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화장실 가지 못하고 씻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굶어야 했던 14일은 비장애인의 계산법으로는 140일에 버금갔을지도 모른다. 그 ‘고공’에서 내려오며 이도건씨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다고 한다. 구경꾼에 불과한 사람들에게는 끝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싸움의 시작인 셈이다.
나라고 해서 공감 능력 부족의 예외는 아니다. 오래전, 강원도 삼척 지역의 광산에 가서 광부들에게 강의를 하며 첫마디로 말했다. “휴, 5시간 반이나 걸렸네요.” 그 말은 ‘2시간짜리 강의 하나 하러 5시간 반이나 왔다’는 공치사였다. 광부들 중 한 사람이 나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말했다. “다 그래도 사람 사는 뎁니다.” ‘아차, 실수했다’ 싶었다.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내가 전혀 읽지 못한 것이다. 강원도 지역에 가서 ‘삼척’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보일 때마다 그 부끄러운 기억이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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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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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에서 2년 넘도록 하청 노동자 간접고용 철폐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동양시멘트 노동자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노동아카데미 종강 수업에 와 주었다. 이미 정년을 넘긴 노동자가 있었는데 자신은 “뒤풀이 야사 담당”이라며 굳이 발언을 하지 않기에 끝내면서 마무리 발언을 부탁했다. 마이크를 잡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 노동자가 말했다. “정년을 넘겼는데도 계속 투쟁하는 이유가 뭐냐고 저한테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거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노동조합이 아니었으면 이 나이에 어떻게 저한테 이렇게 좋은 수십명의 동지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러한 생각으로 앞으로 열심히 싸워서 꼭 이기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궁금해하는 이유가 그 노동자에게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출발점인 셈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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