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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4.25 18:27 수정 : 2017.04.25 19:05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그렇다면 그 ‘형평성’을 이번에는 순직으로 인정받은 정규직 교사와 인정받지 못한 비정규직 교사 사이에서 한번 판단해 보자. 법 형식 논리 외에 그 차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정규직 교사 ‘순직 공무원’이 더 높은 예우를 받는 ‘순직 군경’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지켜보며 비정규직 교사 유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인문학 대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정하는 토론 카페 주제를 “비정규직이 당한 산업재해, 정규직과 똑같은 보상을 받아야 하는가? 비정규직이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라고 써서 입구에 내걸었다. 그렇게 정한 이유를 물었더니, 세월호 사건으로 숨진 기간제 교사들은 정규직 교사들과 달리 순직으로 인정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시간 남짓 걸린 토론을 거쳐 청소년들은 다른 많은 방안들과 함께 “어릴 때부터 노동자 권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올바른 인식을 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해 냈다.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 전체가 3년 세월을 허비하며 내린 결론이 청소년들 단 몇 명의 판단력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부끄러웠다.

지난 칼럼에서, 노동자들이 고공 농성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올라갈 굴뚝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노동자들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길바닥에서 몇 년째 싸우고 있는 노동자이고 누군가는 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그렇게 말했던 노동자들 중 한 사람이 지난 14일 서울 세종로 한 빌딩 옥상 광고탑에 올라가 무기한 고공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오래전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야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창밖을 보면 자꾸 딴생각을 한다고, 사장이 공장을 설계할 때 창문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우리 공장에는 창문이 없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이가 빌딩 옥상 광고탑에서 다른 사업장 ‘동지’들과 함께 삭발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2008년 10월에도 그이는 46미터 높이의 송전탑에 올라가 삭발한 적이 있다. 송전탑에서 농성하는 두 노동자가 서로 상대방의 머리를 하얗게 밀어준 뒤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고 분노가 치민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노동조합을 인정해 달라는 것뿐이었지만 이마저도 힘든 모양이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 현실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그때로부터 8년 세월이 지났건만 그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8년 전에 외쳤던 구호와 지금의 요구 사항이 어찌 그리 같을 수가 있는가?

지난 칼럼에서는 또, 세월호가 인양되는 과정이 언론에 자세히 보도되고 사람들이 관심이 잠시나마 세월호에 집중되는 모습을 보며 그것조차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는지,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생각 때문에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들이 혹시 그런 사람들은 아닌지, 관심을 기울이자는 얘기도 했다.

똑같은 일이 또 기시감처럼 되풀이됐다. 세월호 사건 당시 학생들의 대피를 돕다가 숨진 교사를 ‘순직 공무원’보다 더 높은 수준의 예우를 받는 ‘순직 군경’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학생들을 구조한 이씨는 특별한 재난 상황에서 군인, 경찰·소방공무원이 담당하는 위험한 업무를 하다가 사망했다”며 “순직 군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것이 “형평성에 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옳은 판단이고 진작 나왔어야 할 판결이었다.

그렇다면 그 ‘형평성’을 이번에는 순직으로 인정받은 정규직 교사와 인정받지 못한 비정규직 교사 사이에서 한번 판단해 보자. 법 형식 논리 외에 그 차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정규직 교사 ‘순직 공무원’이 더 높은 예우를 받는 ‘순직 군경’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지켜보며 비정규직 교사 유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세월호 사건 3주기가 되던 날,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했다. 추모관 설립과 운영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갔고 관이 주도하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사는 곳 가까이에서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고 그 이웃들을 추모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추모관 입구에는 세월호 폐회로티브이 영상들이 틀어져 있었는데 그 화면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아, 여기 우리 ○○ 나온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럿이나 있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차별하는 일까지 그 해결을 새 정부에 미룰 필요는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그 ‘형평성’이 실현되는 모습을 희망의 약속으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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