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19 21:54
수정 : 2009.11.19 21:54
|
파르진 바흐다트 뉴욕 배서대 연구교수
|
지난 9월 유엔 총회를 일주일 앞두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텔레비전 방송 연설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거짓말이자 신화적 주장”이라고 부인했다. 그는 이전에도 홀로코스트가 실제 있었는지에 종종 의문을 제기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완전히 부정해버린 것이다.
아마디네자드는 왜 끊임없이 홀로코스트에 의문을 품고 부인하는 걸까? 단순한 무시인가, 악의적 부정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이 문제를 따져보는 것은 상당히 복잡하다. 그는 테헤란 과학공업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아마디네자드 정부의 일부 각료들이 국내외 대학의 학위를 위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 최고위직 관리들의 학위 위조는 정권의 정통성 위기를 키워왔다. 일부에선 아마디네자드의 학력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유대인, 집시, 좌파주의자, 동성애자 등 수백만명의 무고한 목숨이 조직적으로 학살된 홀로코스트가 실제로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 굳이 박사 학위까지 필요하진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만 건의 책과 영화와 증인과 연구가 인류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지금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듯이, 여러 선입견과 이해관계 때문에 홀로코스트나 20세기 전반 일본의 잔학한 만행 등 잘 기록되고 과학적으로 확립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게 마련이다.
아마디네자드와 그의 주변, 또 그의 지지자 중 상당수가 인종주의적이고 반유대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디네자드의 보좌관인 모하마드 알리 라민은 이미 이란에서의 학생 시절과 독일 유학 시절부터 노골적인 반유대 감정을 드러내왔다.
그러나 아마디네자드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입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서방과 이스라엘에 도전하려는 그의 시도에서 나온 ‘정치적 계산’이라는 점이다. 아마디네자드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인을 통해 전세계의 무슬림들, 그중에서도 이란 밖의 무슬림들에게 이스라엘과 서방에 대한 본능적 반감을 호소한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더 큰 수탈을 당한 무슬림들에게 그런 감정을 호소함으로써, 아마디네자드가 팔레스타인 난민과 이슬람 세계에서 누리게 되는 대중적 인기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제정치의 체스판에서 실체가 잡히는 정치적 움직임은 아닐지라도, 이란과 아마디네자드 정부에 대한 압도적 다수의 무슬림들의 선의는 향후 이란 정부가 이스라엘 및 미국과 충돌할 때 지렛대로 이용될 수 있다. 이란이 이스라엘 및 서방과 군사적 대결을 할 경우, 이란은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이란 밖 전세계 수백만명의 무슬림들에게 의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디네자드 정권의 영악한 계산이 그의 반서방 정책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와 상관없이, 무슬림들의 반유대적 시각에 대한 지지는 ‘팔레스타인과 무슬림들이 이스라엘과 서방에 억압받고 있다’는 자신들의 주장에 장기적으론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인은 오직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서방의 편견만 악화시키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잔학한 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아이러니가 될 수 있다.
바로 지금은 전세계의 무슬림들이 아마디네자드 정부의 정치공학을 깨닫고 거기에 빠져들지 않아야 할 때이다.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이슬람 세계가 서방과 이스라엘로부터 역사적으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압박받고 있다는 주장의 정통성을 재확인하는 것은 무슬림 지식인과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의무다.
파르진 바흐다트 뉴욕 배서대 연구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