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04 20:10
수정 : 2009.12.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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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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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선 최근 수년째 격렬하고 감정적인 법정다툼이 진행중이다. 스웨덴 북부 지역의 지주 100여명이 자신들의 사유지 안에 있는 목초지에 순록 사육자들이 수천마리의 순록을 풀어놓는 것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상당수가 거대 삼림회사들인 지주들은 순록 방목으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순록 사육자들은 지금까지 자유롭게 방목을 해온 관례적 권리를 주장한다. 지방법원의 1심과 2심 재판부는 순록 사육농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주들은 이에 불복해 왕립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최종 판결까지는 또 몇 해가 더 걸릴 것이다.
법정다툼의 결정적 측면은 순록을 사육하는 사미족이 북유럽의 공인된 소수 원주민 종족이란 점이다.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순록은 사미족 같은 유목민들의 전통적 방식으로만 사육됐다. 순록 떼가 겨울에는 극지방에 가까운 혹한 기후 탓에 저지대로 이동하고 여름에는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데,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순록을 쫓아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미족들도 ‘문명’ 확장의 희생양이 되기 시작했다. 1000년 전 사미족은 스칸디나비아반도 남부의 왕국들에게 해마다 세금 공납을 강요받았다. 17세기 이후엔 길도 없는 산에서 은과 구리 광석을 캐어 바쳐야 했다. 사미족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억압이 자행됐고, 새로운 이주농민들의 정착이 장려되면서 ‘와일드 노스’(북부 야생지역)가 식민지화됐다. 이로 인해 농경지의 경계가 원주민 거주지역으로 확장되면서 토지 사용을 둘러싼 근본적 갈등이 생겨났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사이에 스웨덴의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사미족 문화의 파괴는 철도와 도로의 건설 때문에 더욱 가속화했다.
1930년대 대공황과 경제위기 당시 집권당의 핵심 정책은 북부지역의 큰 강들에 수백개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광대한 면적의 사미족 거주지나 수만마리의 순록의 생존 터전이 사라지는 것은 정책결정자들의 안중에 없었다. 수력발전소 확대 정책은 50~60년대까지 지속됐다.
이후 오랜 투쟁 끝에 사미족은 마침내 원주민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는 국가의 일부를 사미족 문화에 대폭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박물관에서 사미족 문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사미족 언어로 출판된 책들을 펴내기 위한 보상금도 지급되고 있다. 수세기 동안 거의 멸실돼온 그들의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사미족이 잊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사미족의 가장 큰 상징인 순록 사육을 국가 보조금으로 장려하는 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보조금 지급의 전제조건은 순록 사육을 효율적 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효율성’과 ‘보조금’이란 이중 기준은 수만마리의 순록 사육이 몇몇 대기업의 몫으로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기업은 전통적인 유목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사육지역 내 순록 떼의 움직임은 헬리콥터로 통제된다.
상황은 도로 제자리다. 지금도 순록 사육을 하는 사미족은 10% 정도인데, 이들은 역사적 희생자로서 자유방목에 대한 무제한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사미족이 아닌 지주들은 사미족에 대한 과거의 잘못된 정책들에 조금도 책임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 양쪽 모두는 필연적으로 상업적 기업의 이해타산에 의해 지배를 받게 돼 있다. 이런 모순을 애초 이 사태를 잉태했던 시스템을 개선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사회제도가 필요하다. ‘순록 재판’은 세계화한 자본주의의 근본 문제를 보여주는 핵심 사안 중 하나다.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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