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30 21:41
수정 : 2009.12.3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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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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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0일 북한이 단행한,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교환하는 극도의 화폐개혁은 사적인 시장 성장에 반대하는 노동당 강경파들의 반격이다. 대고난시기(1995~96년)에 출현한 이 시장은 무역업자, 밀수업자, 자영업자 등 작지만 중요한 중산층의 출현을 이끌었다.
처음 무허가 시장이 열렸을 때, 당국이 놀랐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도로변을 따라 간이노점이 생기고, 과일부터 생필품까지 물품도 다양해지는 이런 시장은 점점 공개화됐다. 배급을 못 하는 정부는 이런 시장을 묵인해 줄 수밖에 없었다. 지난 98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관료들은 내게 “‘경애하는 김정일 위원장’은 이 어려운 시기를 사는 우리 인민들의 영웅적인 노력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품 종류가 공산품 등으로 점점 확대되며, 중소 규모 공장 경영자와 식당 등 소규모 사업가들의 재량권이 점점 커졌고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 평양을 방문했을 때 정부 소유의 자동차를 리스해 자신의 수익을 자유롭게 올리는 개인택시 영업자들이 눈에 띄었다.
평양 등 대도시의 이런 중산층 규모는 대략 2만5000명 정도로 적은 숫자다. 그 최상위층에는 부패한 관료나 군부와 결탁한 수백명의 무역업자와 밀수업자들이 있다. 화폐개혁이 곧 일어난다는 걸 안 이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유로화, 달러화, 위안화, 엔화 등 외국 화폐로 미리 바꿔놓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중산층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층은 북한 화폐만 갖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모은 것을 모두 잃고 공개적으로 체제에 항의하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현재 북한 체제의 어려움과 최근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북한이 보이고 있는 (유화적인) 자세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
북한 강경파들이 원하는 건 현 체제의 보존과 이를 통한 권력, 그리고 부수입의 유지다. 이를 위해 미국과 일본, 한국과 세계은행의 지원을 통해 무너지는 경제기반을 재건하고, ‘체제 붕괴’를 불러올지 모르는 미국의 선제공격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서곡으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만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실체이고, 더는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북한은 비핵화를 향해 움직일 것이다.
북한은 분명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느끼고 있다. 미 공군의 전폭기 기지가 한국과 일본에 각각 있고, 태평양에는 8개의 미 잠수함이 있는데, 이 중 두개는 8분 안에 핵탄두를 장착해 12분 안에 평양을 폭격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한은 외교 정상화에 더해 미국의 투자를 포함한 경제관계 정상화를 강하게 요구한다. 북한 외무성 관리는 “우리가 원하는 건 ‘평양의 미 외교관’뿐 아니라 ‘북한 전역의 미 사업가들’”이라며 “그러면 우리는 공격받을 우려를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의 핵시설을 무력화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6자회담 국가들이 영변 핵 재처리 시설 해체의 대가로 중유를 제공한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다. 일본은 전체 60만t 가운데 20만t의 중유 제공을 약속했지만, 미국이 북한을 테러국 명단에서 제외하려는 결정에 반대해 이를 철회한 바 있다.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은 지난 1월 방문 당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반도 정책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첫번째 과제는 일본이 직접적으로 중유를 제공한다는 10·3 선언을 이행하도록 설득하는 것이거나, 중국, 한국, 러시아가 중유를 제공한다는 협정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비핵화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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