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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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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가을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 이를 정상궤도로 되돌려놓기 위해선 대규모의 지속적인 재정 자극책이 필요하다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었다. 2009년 초 미국과 영국 모두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밀어붙였다. 다른 유럽국가 대부분도 뒤따랐다. 중국은 심지어 1년짜리 경기부양책이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을 만큼 적극적이었다. 경기부양책이 대규모 재정적자를 의미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민간부문의 수요와 대출은 무너졌다. 공공부문이 높은 수준의 고용과 생산을 떠받치기 위해 민간부문을 대체해야 했다. 민간부문에서 수요가 적다면, 그리고 공공부문이 수요를 늘리지 못한다면, 생산은 줄고 실업은 늘 것이다. 물론 당시에 주요 은행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유럽과 미국의 은행들은 엄청난 금액의 구제금융 약발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은행들은 경기부양책으로 발생한 재정적자에 대해 싫은 소리를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은행들은 대부분 되살아났다. 은행들의 수익과 보너스는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근접하거나 심지어 넘어섰다. 정부에서 필요한 것을 얻고 난 뒤, 은행들은 지금 높은 재정적자에 대해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은행가들은 많은 나라들이 더는 복지국가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고 본다. 그들은 은퇴 및 의료보험, 실업자에 대한 혜택을 크게 삭감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기적 전망과 현재의 위기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인간의 수명은 늘고 있다. 이는 각국이 은퇴연령을 늦춰 은퇴자 비율 증가를 제한하거나 비용 증가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세금을 늘려야만 한다는 뜻이다. 많은 경제학 박사들이 이 문제를 부각시키려 애써온 반면, 정치가들은 한 세기 넘게 은퇴 연령이 높아져왔고 세금도 정기적으로 늘어났다고 인식한다.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이 우리보다 특별히 어리석지 않다면, 지출과 수입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가들은 장기적인 문제를 현재 상황에 대한 공포를 키우는 데 이용하길 좋아한다. 그러나 경제 논리가 1년 반 사이에 바뀌지는 않았다. 세계는 아직도 극심한 수요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주택 거품이 주도한 성장은 미국과 세계 여러 곳에서 막을 내렸다. 정부가 수요를 창출하지 않으면 실업은 늘고 성장은 둔화한다. 재정적자에 비판적인 은행가들이라도 논리 자체를 폐기할 수는 없다. 지출을 줄이거나 증세를 억제하는 것은 모두 실업과 직결된다. 아무리 긴박한 재정적자 감축도 이자율을 세계가 극심한 수요부족에 시달린 2009년 겨울 수준로 되돌릴 만큼 낮출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은행가들은 어떤 다른 그림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모델은 20%가 넘는 실업률에 시달리고 10여년 안에는 국내총생산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같은 나라들이다. 은행가들의 방책은 수천만명의 고통을 암시하지만, 거기에 자신들의 고통은 포함되지 않는다. 대안이 있다. 채무가 과다하고 통화정책을 지탱할 수 없는 나라들은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채무를 재조정할 수 있다. 2001년 아르헨티나는 이런 방법으로 6개월 동안 급격한 경기침체를 겪었지만 그다음 6년 동안은 견고한 성장이 뒤따랐다. 경제난을 겪는 나라의 국민들이 10년 넘게 궁핍으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
경제난을 겪은 나라들의 지도자들은 은행가들과 그들의 이코노미스트들의 말에 귀기울인 탓에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갔다. 그들은 모두 자산 거품은 없으며 은행이 위험에 대처할 줄 안다고 말했다. 은행가들과 그들의 이코노미스트들은 틀릴 수 있는 최대치만큼 틀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도 일자리를 갖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하지만, 그들은 아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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