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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04 19:21 수정 : 2012.09.04 19:21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전쟁은 군주가 시작하지만 싸우는 건 백성”이라는 서구의 옛말을 읽은 적이 있다. 무릇 전쟁은 통치자들이 이런저런 이해관계로 시작하지만 막상 그 부담을 짊어지는 것은 일반 백성들이라는 푸념이자 경구이다. 철학자 칸트가 말년에 집필한 <영구평화를 위하여>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군주들은 전쟁으로 얻는 ‘이익’은 취하지만 지더라도 ‘부담’은 결국 백성들 몫이니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동기에서도 전쟁을 시작하기 쉽다는 것이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외교분쟁이 양국 정치가들의 개인적 이해관계라는 의미가 아니다. 영토와 역사 문제는 국가와 외교의 근간이 달려 있다. 다만 이번 분쟁의 경위를 살펴보면 양국 정치가들이 상호 불신감을 증폭시키면서 정면충돌에 이른 측면이 두드러진다. 여기서도 몇 번 지적했듯이 분기점은 지난해 12월 교토에서 열린 한-일 수뇌회담이었다. 일본의 소극적 대응에 불만이 쌓인 이명박 대통령은 ‘작심’한 듯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식으로 거론하고 회담 시간의 대부분을 이에 할애했다. 외교적으로는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 매우 심각한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당시 새로 출범한 노다 정권은 이전 민주당 내각들과는 상당히 다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점이 한-일 외교에도 서서히 갈등을 증폭시켜 갔다. 교토 수뇌회담에서도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의있는 대응을 촉구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했다. 한국의 역사문제 제기에 대해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반격’을 가한 것이었다. 근년의 한-일 수뇌회담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던 현상이었다. 보수적 국가관을 지닌 노다 총리의 정치이념이 엿보인 장면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별로 보도되지 않았지만 교토 회담에서는 일본이 외상회담도 동시에 열어 독도 문제를 거론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직전에 이를 통보받은 한국 쪽이 김성환 외무장관의 방일을 취소해 무산됐지만, 겐바 고이치로 외상은 대통령과 동행한 천영우 대통령보좌관과 ‘회담’을 설정하고 독도 문제를 공식 거론했다.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독도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한-일 사이에 점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올해 2월에는 겐바 외상이 국회 외교연설에서 최근 10여년의 전례와는 다르게 독도영유권을 직접 언급했다. 영토 문제에서도 보수적 국가관에 입각한 공세적 태도가 현저해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이런 외교적 응수의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국 외교는 설명이 너무나 부족했다. 그 결과 한국의 행동이 돌출된 것으로 보이는 모양새가 된 측면도 있다. 외교 싸움에서는 대응조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설명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만의 논리’로는 부족하다. 또한 그것이 일본 내에서 아시아 인근국가들과 마찰을 증대시키는 국가주의적 외교노선의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자성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로 한-일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일본에서는 더 보수적인 정권이 나타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만 양국 ‘백성’들 대부분은 정치가들보다는 아직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다. 양국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같이 나아가기 위해서도 대내외적으로 설명하고 논의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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