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한기 소설 <볼티모어의 벌목공들> ⓒ이현경
|
오한기 소설 <4화>
나는 노인이 을라를 보는 사이 근처에 있는 화강암 바위를 살핀다. 맨폴필드를 찾는 것이다. 맨폴필드는 극지방의 화강암 바위에 붙어사는 희귀 지의류이다. 볼티모어는 화강암 지층으로 이루어진 섬이고, 맨폴필드가 서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학계에서는 맨폴필드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는 말이 떠돌았다. 나도 도감에 실린 사진으로만 봤다. 멀리서는 용암이 바위를 뒤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가까이에서 보면 무수한 별 모양의 입자가 그 용암을 이루고 있었다. 맨폴필드는 기온에 따라 색이 변했고, 그 색에 따라 가격이 매겨졌다. 남극 퀸모드랜드에서 발견된 제라늄 빛깔의 맨폴필드는 68년형 폭스바겐 200대 값에 거래됐다. 맨폴필드를 떠올린 이후 볼티모어의 다양한 지의류들이 흔하디흔한 솔이끼와 다를 바 없이 여겨졌다.
하도 희귀한 터라 맨폴필드의 실존 여부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그중 하나가 1985년 영국의 과학자 레이먼드의 일화이다. 레이먼드는 아일랜드 에리걸산에서 맨폴필드 군집을 채집하여 주목받았고 일약 식물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레이먼드가 맨폴필드라고 주장한 건 사실 시라수크였다. 시라수크는 맨폴필드의 사촌 격인 고착지의로 얼핏 보면 맨폴필드와 유사했지만 가근 기관의 균사 형태가 단조로워 연구가치가 없다. 그 뒤 레이먼드는 런던의 호텔 방에서 자살했다. 그의 유서는 맨폴필드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가 죽자 레이먼드가 도박에 중독돼 몇 년 전부터 빚 독촉에 시달렸고, 빚을 갚기 위해 시라수크를 암시장에 내놓았다는 말이 떠돌았다. 불현듯 맨폴필드가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처럼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저 앞에서 노인은 을라가 아니라 삐쩍 마른 프리부츠를 쓰다듬고 있다. 나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한다. 노인이 내게 다가와 이 프리부츠가 말라붙은 이유에 대해 묻는다. 나는 을라의 양분 갈취에 대해 설명한다.
“그럼 저 쥐새끼처럼 번식하는 나무들을 없애는 데 베는 것보다 저 이끼를 재배하는 게 더 수월하지 않겠어?”
노인이 숲 속 어딘가로 시선을 돌리며 묻는다. 나는 노인의 눈이 고정된 곳을 바라본다. 대여섯 명의 벌목공들이 프리부츠를 베고 있다. 톱날은 끊임없이 프리부츠의 두툼한 몸통을 파고든다. 순간 긴 함성이 들린다. 벌목공들이 작업을 멈추고 숲 깊숙이 달음질친다. 거대한 프리부츠 한 그루가 해안가 방향으로 쓰러지면서 옆의 나무들도 연달아 고꾸라진다. 굉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이 피어오른다. 나는 귀를 막고 고개를 숙인다. 오래지 않아 소리가 잦아들고 나는 고개를 든다. 노인은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선 채 질문에 서둘러 답하라는 듯 나를 응시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인공 배양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고 답한다. 노인은 긴 숨을 내쉬고 걷기 시작한다. 사방에 프리부츠뿐이라 좀처럼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 노인을 따라 앞으로 나갈 뿐이다. 어디선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수군대는 말소리도 들린다. 나는 섬뜩해져 그 자리에 멈춘다.
“그냥 앞으로 가.”
노인이 덤덤하게 말한다. 열 발자국 정도 움직였을 때 저 앞 몽비앙 덩굴 사이에서 대여섯 명의 메스티소들이 튀어나온다. 벌목공들이다. 노인과 벌목공들은 언성을 높여가며 설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노인이 벌목공들에게 레밍턴을 겨누자 벌목공들이 생소한 언어를 뱉어낸다.
“구에로.”
그중에 ‘구에로’라는 말이 선명하게 들린다. 대부분의 외국어가 그렇듯 ‘구에로’라는 단어는 텅 빈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거센 억양으로 보아 위협의 뜻이 담긴 게 확실하다. 벌목공은 ‘구에로’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내뱉으며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나는 ‘구에로’가 ‘죽음’과 비슷한 뜻이라는 걸 직감한다.
12월 3일 22시. 노인의 말대로 폭우가 퍼붓기 시작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구에로. 구에로. 프리부츠들이 비를 맞고 자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12월 5일 2시. 암흑 속에서 랜턴의 불빛이 일렁인다. 나는 맨폴필드를 찾아 랜턴 불빛을 따라간다. 주머니칼로 맨폴필드 군집을 도려내 침대 밑에 숨겨둔다 해도 나자기에 저장된 수분 덕분에 몇 달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 탓인지 아무리 랜턴으로 숲을 헤집어도 산책 도중 보아놓았던 화강암 바위를 찾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다. 방향을 틀어보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랜턴으로 발밑을 비춘다. 발밑에 엉켜든 프리부츠 뿌리가 발을 꽉 감싸 쥐고 있다.
“구에로.”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벌목공인지도 모른다. 뒤를 돌아본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휙 하고 지나가는 것 같다. 나는 겁에 질려 숙소 방향으로 달린다. 발을 디딜 때마다 뒤엉킨 뿌리들이 발에 감겨든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