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서희, 엄마의 도발
엄마인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 얼핏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엄마가 있다는 말에는 엄청난 위안이 있다. 나는 그녀를 거쳐 세상으로 나왔고 그녀를 먹고 딛고 자랐다. 나의 아이에게 나는 아직 엄마로서 전부인 것처럼, 나 역시 오래도록 그녀를 엄마로 여기고만 살았다. 그녀가 여자로서 존재를 드러내는 순간은 매번 당황스러워서 내 기억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교복을 입은 채로, 엄마와 지하철을 타고 친척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는 연인의 다정한 모습을 눈치 없이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녀를 타박했다가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 “쟤네들은 참 좋겠다. 난 저런 거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 나이가 지금의 나보다 조금 어렸다. 그녀는 종종 나를 붙잡고 신세한탄을 늘어놓기도 했다. 외롭다고, 사랑받고 싶다고. 그 말은 지금 생각해보니 연애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고등학생 딸에게 할 소리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어쩐지 엄마의 처지가 나와 다름없어 보였다. 가끔 생각한다. 그때 만약 이렇게 대답했으면 어땠을까. 엄마, 나도 연애하고 싶어. 억지로 학교에 남아 밤늦게까지 자율학습 하는 것보다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며 저녁을 맞고 싶다니까. 엄마는 빛나는 20대를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일로 시작했고 수입의 대부분을 시가에 보내야 하는 열네살 연상 남편의 아내로 수십년을 살아냈다. 그녀에게 결혼은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경험이었다. 부잣집의 영민한 막내딸에게 젊은 날의 풋사랑은 그 값이 터무니없었다. 여고생이 임신을 했고 학교를 그만뒀고 아이를 낳자마자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언젠가 엄마가 내게 한 말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두 살 터울도 온전히 지지 않는 두 아이를 낳아 키우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세상과도 바꿀 만큼 예뻐 보이겠지만, 아홉살 정도만 넘어 봐. 예전 같지 않을걸. 온통 애들밖에 보이지 않는 시간도 결국 지나간다. 슬슬 답답해지기도 하고 딴생각도 날 거야.” 그때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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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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