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서희, 엄마의 도발
휴가를 맞아 한국을 방문중이다. 점심·저녁 약속으로 지인들을 만나면 제일 먼저 듣게 되는 말은 언제 떠나느냐는 질문이다. 언젠가 떠날 사람이라는 타이틀은 쓸쓸하다. 미안하다 못해 송구스러운 이름이다. 그런 말을 듣기 시작한 건, 프랑스 체류 시절이었다.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을 준비하던 1년 동안, 나와 친구가 된 50대의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담담하게, 흘리듯이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장을 보러 갔다 깜빡 잊고 사지 않은, 그래도 별문제 없는 물건 하나가 생각난 듯 전남편과의 이별을 이야기했다.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떠나갔어요.” 그녀는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20대에 현지인과 사랑에 빠져 남는 것을 선택했고 두 아들을 낳고 가정을 꾸렸다. 남편은 10년간의 결혼 생활 뒤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를 떠났다. 그녀는 나를 만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말했다. “떠날 사람들과 교류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나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귀국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괜찮은 직장도 기다리고 있었다. 단, 친정과의 관계가 마음에 걸렸다. 다시 부모님의 영향력 아래 돌아가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래서 결혼을 선택했으나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깨달았다. 한국에서 평범한 여자가 이전의 가족을 벗어나는 길은 결혼이겠지만, 그것은 또 다른 가족에의 편입을 의미한다고. 그 가족이 행복하든 아니든,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와 함께 깨달은 사실은 내가 정신없이 준비해왔던 귀국이란, 훗날 덜 초라해지기 위해 선택한 기차표 같은 것. 막상 차에 오르더라도 내릴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울며 도착할 행선지 같은 것. 그녀의 남편이 떠나면서 남겼다는 말의 선명한 정직성이 차라리 홀가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결국 행선지를 바꿔 타듯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의 기차를 탔다. 느슨한 시댁과의 관계나 부부만의 독립적 자리가 중요한 미국인과의 결혼 생활 중에서도 그녀의 남편이 했다는 말은 뜬금없이 내 가슴을 흔들고 지나가고는 했다. 차츰, 사랑하지 않으니 떠나겠다는 말은 생각만큼 무책임한 선언이 아니었음을 이해했다. 그녀의 삶을 쓸쓸하다고 느꼈던 것도 나의 서툰 편견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들은 사랑과 자신과 상대방을 향한 정직하고도 용감한 선택을 했다고. 사랑이 제대로 진화하지 않고 스러진 이후를 지키는 결혼은 인생의 여정에 더 고독한 풍경을 채워넣을 수도 있는 선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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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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