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서희, 엄마의 도발
오전에 언니로부터 일흔을 훌쩍 넘긴 아빠의 기억이 현저히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전까지 6년가량 나와 함께 살았던 아빠는 현재 미국 동부에 있는 언니와 지낸다. 그는 더이상 갈 곳 없는 노인이 되어 우리에게 왔다. 동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에게 태연한 척 몇 차례 묻기도 했다. “기억나세요? 저 열 살 때 밤 열두 시 넘어서 담배 사오라 하셨는데 제가 나가기 무섭다고 그랬더니 문 앞에서 발로 짓밟고 마구 때리신 거?” “글쎄다. 설마 그랬을 리가 있나. 나는 아무 기억도 없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기억 중 하나인, 대학 3학년 때 맞은 이야기를 해드렸다. 그때 나는 당신 손에 목 졸린 자국이 파랗게 남아 있는 채로 학교도 다니고 애인이랑 종로에서 데이트도 했었는데. 아빠는 여전히 모르는 일이라고, 하지만 너희들 자랄 때 그 정도 안 맞고 자란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예의 단정한 말투로 대답하셨다. 임신 기간 동안 꿈속에서 수도 없이 맞았다. 다시 아이가 되어 있는 나는 맞고 또 맞고 울음을 터뜨렸다. 울면서 깨어나는 나를 남편은 품에 안고 달래주었다. 사정을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느낀 것은 나는 이제 선택할 수 있다는 위안이었다. 폭력의 서사는 잠깐 꿈에 밀어놓고 밖에서 새롭게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다 보면 꿈의 풍경도 다른 이야기들로 넓고 풍요로워져서, 악몽은 작아지고 기력 쇠한 맹수처럼 주변을 맴돌기나 할 거라고. 시간이 흘러갔다. 아빠는 놀랍게도 꽤나 괜찮은 할아버지였다. 그럼에도 한번, 소심한 복수를 한 적이 있다. 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부모의 부당한 폭력 밑에 자라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가장 가까운 예를 들어주었다. 엄마도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많이 맞았노라고. 하지만 나쁜 아빠가 나쁜 할아버지가 되는 건 아니라고. 인간은 환경과 선택, 의지에 의해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다가와 말했다. 엄마, 할아버지는 엄마를 때린 적이 없대. 아주 좋은 아빠였다고 하셨어. 어릴 적 집안 구석에 꾸려져 있던 아빠의 등산가방이 떠올랐다. 아빠는 틈만 나면 어디론가 떠났다가 돌아오셨다. 가방이 사라지면 떠나신 걸 알았고 가방이 시야에 들어오면 돌아오신 걸 알았다. 낡은 가방의 부피는 쉽게 줄거나 늘지 않은 채 그대로인 듯 보였고 언젠가 나는 가방 주머니를 뒤져 만년필을 훔쳤다. 이국의 도시에서 아빠의 가방을 타고 내 손에 정착했던 펜 하나는 그로부터 며칠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상에는 기척도 없이 사라지는 것투성이다. 아빠는 늙고 기억을 잃어가며 내 가까이 머물고 있지만, 그 역시 옛날의 만년필처럼 어디론가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그래도 깊숙이 남아 있는 비릿한 감정들 때문에 나는 다시 그로부터 무언가 훔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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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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