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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더 쇼핑 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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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더 쇼핑 트립>
한적한 시골에서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노부부 앞에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의 중고카메라’ 전시행사 안내였다. 젊은 시절 카메라를 좋아했던 할아버지(구메 아키라)는 아마도 생애 마지막이 될 도쿄행을 결심하고, 만류하던 할머니(와타나베 미사코)도 여행에 동참한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에서 2009년 방영된 단편드라마 <더 쇼핑 트립>은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 속 노부부의 일상을 뚝 떼어내 좀더 환한 수채화로 채색한 듯한 작품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방석 대화 장면이나, 사물의 풍경을 여백처럼 끼워 넣는 화면도 오즈 야스지로 특유의 숏을 연상시킨다. 고속열차 안에서 방금 전 물건 둔 곳을 잊어버리고는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장면처럼 <동경 이야기> 도입부의 직접적인 인용도 있다.
무엇보다 오즈 야스지로의 잔향이 도드라지는 점은 소소해 보이는 일상이 지닌 풍부한 함의다. <더 쇼핑 트립>에는 극적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처럼 노부부의 일과는 주로 텔레비전을 보고 밥 먹는 일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 단조로운 일상을 묵묵하고 꾸준하게 응시하는 카메라에 적응하게 되면 그때부터 부부의 이야기는 그 어떤 극적 갈등보다 크나큰 정서적 반향을 일으킨다.
가령 거의 움직임이 없는 카메라가 한걸음 떼기조차 힘겨운 노인들의 느릿한 동작과 일치할 때, 혹은 노인의 시력을 그대로 반영해 초점을 희미하게 흐릴 때, 이 밋밋해 보이던 이야기는 일상의 한 단면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거쳐온 무게 있는 시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여행 대비 체력단련으로 산책을 감행한 할아버지가 마침내 동네 신사의 계단을 다 오르는 장면이나 도쿄의 카페에서 오랜 시행착오 뒤 주문에 성공하는 장면이 서스펜스 영화 못지않은 긴장감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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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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