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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2.12 20:13 수정 : 2016.02.13 10:41

일본드라마 <나를 보내지 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나를 보내지 마>

수술대 위에 한 남자가 누워 있다. 의사는 남자의 몸에서 장기를 적출한다. 하나가 아니다. 연이어 여러 장기를 적출해낸 의사는 냉정하게 수술실을 떠난다. 이 모든 광경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던 호시나 교코(아야세 하루카)는 아직 미약한 숨이 붙어 있는 남자에게 안락사를 유도하는 주사를 놓는다.

몹시도 음산하고 미심쩍은 장면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다시 20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어린 교코는 요코라는 기숙학원에서 자란다. 아름다운 전원 속에 위치한 요코는 예술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인격을 고양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그런데 조금만 지켜보면 이곳이 “보통의 학교”와는 다르다는 단서들이 계속 발견된다. 아이들의 옷은 하나같이 몸에 너무 크고 건물 담장은 지나치게 높다. 일주일에 한번씩 엄격한 신체측정이 이뤄지고 아이들은 혹시라도 키가 자라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대체 이 학교의 진짜 정체는 뭘까.

올해 1분기 일본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할 신작 중 하나인 <나를 보내지 마>는 장기기증을 목적으로 탄생한 복제인간들의 슬픈 운명을 그린 드라마다. 에스에프 장르에서 흔히 연상되는 미래적 광경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 뒤에 담담하게 잔혹성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그 어떤 디스토피아 서사보다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유사한 소재를 다룬 영화 <아일랜드>와 비교하면 이 작품만의 개성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사실 이 개성은 걸출한 원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최고의 영연방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동명 원작은 드라마보다 절제되고 그윽한 필치로 비극성을 배가시킨다. 가혹한 운명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복제인간들의 고뇌가 섬세하고 촘촘한 점묘화처럼 그려져 인간 본질에 대한 성찰에 점점 다가가게 만드는 것이 원작의 가장 큰 힘이었다.

드라마는 여기에 또 다른 개성을 더하고 있다. 원작에서보다 기만적으로 그려지는 요코 학원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특히 그렇다. 요코가 예술교육을 강조하는 진짜 이유는 아이들을 정적이고 차분한 성격으로 이끌어 체제에 쉽게 순응시키기 위함이다.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 억압적 분위기는 전체주의에 가깝게 그려진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원작의 문명비판적 성격 가운데서도 교육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나를 보내지 마>는 동시에 가슴 미어지는 멜로드라마이기도 하다. 교코, 도모(미우라 하루마), 미와(미즈카와 아사미), 세 청춘의 엇갈린 사랑은 제한된 운명과 맞물려 극도의 안타까움을 이끌어낸다. 어린 시절의 교코가 베개를 꼭 껴안고 이 작품 제목의 유래이기도 한 노래 ‘네버 렛 미 고’를 듣는 장면은 이들의 서글픈 숙명과 사랑을 예고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더 마음 아팠던 사랑 이야기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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