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09 19:18
수정 : 2019.08.09 19:30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독일 드라마 ‘바빌론 베를린’
1929년 독일 쾰른 출신의 형사 게레온 라트(폴커 브루흐)는 비밀 임무를 띠고 베를린 경찰청으로 전근을 온다. 그의 정체를 의심한 풍기단속반 선배 브루노 볼터(페터 쿠르트)는 게레온의 행적을 유심히 지켜본다. 일거리를 찾아 헤매던 샤를로트 리터(리프 리자 프리스)는 경찰청 일용직 타자수로 일하면서 게레온, 브루노와 동시에 인연을 맺게 된다.
독일 공산당 지지자들이 5월1일 노동절에 금지된 대중 집회를 열자 베를린 경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33명이 목숨을 잃는다. 진압 현장에서 비극을 목격한 게레온은 경찰청장으로부터 공산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진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고 고민에 빠진다.
<바빌론 베를린>(Babylon Berlin)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년 후 혼란에 빠진 독일을 배경으로 한 범죄 시대극이다. 2017년 제작 시점을 기준으로 역대 비영어권 드라마 가운데 최고 제작비 기록을 세워 이목을 끈 이 작품은 방영 이후에는 뛰어난 완성도와 묵직한 주제 의식으로 국제 티브이 관련 시상식을 석권하다시피 해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열린 제13회 서울 드라마 어워즈에서도 대상을 차지했다.
그동안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작품은 무수히 많았지만,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베를린을 다룬 드라마는 흔치 않았다. <바빌론 베를린>은 독일 역사상 첫 민주주의 국가가 서서히 소멸해가는 1929년부터 이야기를 출발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당시 가장 자유롭고 진보적인 바이마르 헌법을 완성했지만, 전쟁 이후 사회적 불안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고 극심한 계급차, 빈곤 문제, 정치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1929년 노동절 시위를 유혈 진압한 ‘블러디 메이’ 사태는 더 큰 갈등을 불러온다. <바빌론 베를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이 격동기의 어둠과 불안에 잠식된 영혼들로 그려진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으로 인해 발작 증세를 겪는 게레온은 마약성 진통제로 간신히 일상생활을 유지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그의 고통은 사회적으로 이해받지 못하고 숨겨야만 하는 것으로 취급된다.
게레온이 대낮 풍기단속 중 마주치는 사람들이나, 한밤에 잠들지 못하고 찾아가는 바와 댄스홀의 인물들이나 모두 게레온처럼 반쯤 미쳐 있는 이들로 보인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샤를로트도 낮에는 타자수로 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춤추며 매춘을 하는 분열적 인물이다. ‘정신 나간 사람들의 도시’ 베를린 위에 시대의 트라우마가 덮여 있다. 그 무렵의 대공황은 독일을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리고, 그 불안을 틈타 사람들을 최악의 광기로 이끈 괴물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결국 <바빌론 베를린>이 성경의 타락한 도시 ‘바빌론’에 베를린을 비유하면서 전달하려는 이야기는 나치즘이라는 ‘시대의 악’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극우주의가 다시 활개를 치고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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