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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오스트리아의 요하네스 케플러 연구소에서 잡힌 헤일 봅 혜성. 4210년 만에 지구를 방문한 이 장주기 혜성은 혜성 뒤에 자신들을 싣고 갈 우주선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은 한 종교집단의 자살 사태로 이어졌다. 요하네스 케플러 연구소, 크리에이티브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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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별
불길한 꼬리, 혜성
▶ 혜성은 불길함과 재앙의 전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일찍이 발달한 천문학에서도 혜성은 규칙성을 찾아내기 어려운 예외적 존재였습니다. 인류는 핼리혜성의 76년 주기를 밝혀낸 데 이어 혜성에 대한 무지와 광기를 하나둘 걷어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혜성을 알 수 있을까요? 곧 유럽우주국(ESA)이 보낸 로제타 무인탐사선이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에 착륙합니다.
근래 들어 혜성이 유별나게 우리 주변에서 자주 회자된다. 작년 겨울, 낮에도 맨눈으로 보일 것이라며 큰 화제가 되었던 아이손 혜성부터 바로 며칠 전 화성을 아주 가깝게 스쳐간 사이딩스프링, 그리고 이제 곧 무인탐사선이 착륙하게 되는 이름도 복잡한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이르기까지 이제 혜성은 툭하면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 일상적 소재가 된 것 같다.
필자에게 첫 혜성의 기억은 고등학생이던 1986년의 핼리 혜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6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이 혜성을 이번에 보지 못하면 평생 다시 못 본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 그런 가운데 대중매체를 통해 슬그머니 전해지던 ‘불길함’, ‘재앙’ 같은 단어들이 조금씩 짙어져가던 세기말의 분위기와 함께 전해져 왔던 기억이 선하다. 이렇게 보면 혜성은 달이나 화성만큼이나 우리의 삶과 관념의 언저리에 늘 있어 온 천체다. 그리고 이제 그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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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월 아드리아해 주변, 크로아티아의 한 마을에서 촬영된 헤일 봅 혜성.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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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별들의 예외적 존재
1997년 지구에 온 ‘헤일 봅’
우주선 타려고 집단자살까지
혜성은 무시되거나 추앙됐다 76년 만에 돌아온 핼리혜성
18세기에야 혜성 주기 발견
돌아오고 사라지고 충돌하고…
로제타 탐사선, 12일 혜성 착륙
무지와 광기 걷어낼 수 있을까 중국 기록에 “자미궁을 침범했다” 여하튼 이 꼬리 때문에 혜성은 일단 나타나면 하늘에서 제일 잘 보이는 천체 중의 하나가 된다. 이러니 고대인들이 예고도 없이 등장한 혜성에 불길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중국의 기록이나 조선왕조실록에는 ‘혜성이 자미궁을 침범했다’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자미궁은 서양 별자리로는 큰곰자리의 꼬리, 즉 북두칠성 주변인데 왕이나 왕족을 의미하는 만큼 변고가 일어날 조짐이라 해서 아주 불길하게 봤다. 그런데 그 정체가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혜성 관련된 미신과 루머가 횡행하는 점은 안타깝다. 그중 극단적인 사태는 20세기에 가장 밝게 보인 혜성이었던 헤일 봅과 관련된다. 1997년 등장한 이 혜성은 장장 4210년 만에 지구에 돌아온 대표적인 장주기 혜성이다. 그래서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핼리 혜성 등에 비해 신비감이 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뒤에 인류를 구원하려는 우주선이 숨어올 정도로 괴상한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이런 믿음을 가졌던 미국의 종교단체 ‘천국의 문’(헤븐스 게이트)의 리더 마셜 애플화이트와 38명의 신도들은 곧 멸망할 지구를 벗어나 그 우주선에 탑승해 구원을 받고자 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육신을 버린 영혼 상태로 헤일 봅 혜성을 향해 떠나는 것이었고, 집단자살을 통해 이를 실행에 옮기고 만다. 물론 목표하던 우주선에 도달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와 광기에서 비롯된 이런 비극이 아직도 혜성을 매개로 발생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과학과 증거, 합리성을 버리고 극단적인 신념을 좇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 준다. 혜성은 장대한 꼬리를 늘어뜨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실로 경이로운 천체지만, 그 놀라움은 우주 본연의 모습을 밝혀주는 자연의 일부로서 의미있는 것이지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헛된 구원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다. 12일이면 로제타 탐사선에서 분리된 필라이(파일리, 필레) 착륙선이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의 표면에 최초로 내리게 된다. 필라이가 보내올 데이터들은 혜성의 성분과 특징을 밝혀줌은 물론, 수십억년 전 태양계 형성기를 이해하게 할 많은 증거들을 포함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지식과 통찰을 얻어내는 일이야말로 혜성 뒤에 숨어 있을지 모를 우주선을 찾는 것보다 훨씬 놀랍고도 값진 일 아닌가. 파토 원종우 <태양계 연대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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