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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가 자랑하는 ‘젊은 명장’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왼쪽)과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지난 2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치열한 명승부를 보여줬다. 끝내 한명은 웃고, 한명은 고개를 숙였다. 두 라이벌이 보여줄 앞으로의 승부에 K리그 팬들은 행복해질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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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축구광
황새와 독수리의 ‘조류더비’
▶ “황새가 독수리보다 높이 날 것이다.”(포항 스틸러스 손준호) “독수리가 원래 황새보다 높이 나는 것 아닌가.”(FC서울 최현태) 프로축구계에 때아닌 조류 논쟁이 벌어졌다. 황새와 독수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던 황선홍(46) 포항 스틸러스 감독과 최용수(41) FC서울 감독의 현역 시절 별명이다. 단 한번도 같은 팀에서 호흡을 맞춘 적 없고, 대표팀에서조차 주전 공격수 자리를 두고 경쟁한 두 사람의 전쟁이 2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7일 밤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과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초조하게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20일 1차전 90분에 이은 이날 2차전 90분, 그리고 연장 전후반 30분으로도 가리지 못한 승부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210분의 혈투를 마친 양 팀 감독과 선수들은 이제 결과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듯 ‘파이팅’을 외쳤다.
잠시 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울의 골키퍼 유상훈이 포항의 1~3번 키커 황지수, 김재성, 박희철의 골을 연속으로 막아냈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최용수 감독은 환호성을 질렀다. 서울이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포항을 꺾고 4강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올 시즌 아시아 챔피언 길목에서 열린 두 젊은 명장의 맞대결은 이렇게 끝났지만 얽히고설킨 숙명의 라이벌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의 맞대결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FC서울 최용수 개성 강한 선수들을 끈끈한
조직력으로 묶은 ‘형님 리더십’
한발 먼저 팀 리그 우승 달성
전력 약화되자 ‘스리백 카드’
한물간 전술 아님을 증명받아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
부산에서의 쓴맛 소중한 경험
스타선수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리그 우승 이룬 순도 높은 업적
가짜 원톱 둔 ‘제로톱 전술’과
오밀조밀 패스로 ‘스틸타카’ 구현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최용수가 웃다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은 현역 시절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플레이스타일은 전혀 달랐다. 황 감독은 세련되고 영리한 플레이를 펼쳤다. 별명 ‘황새’도 우아한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붙었다. 반면 최용수 감독은 세련되지는 않지만 저돌적이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유명했다. 탁월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페널티박스 모든 곳에서 골을 집어넣는 능력을 과시하며 ‘독수리’란 별명을 얻었다. 선수 시절 명성은 황선홍 감독이 한발 앞서 있다. 최용수 감독이 안양 엘지(현 FC서울)에서 데뷔해 신인왕에 오른 1994년 황선홍 감독은 이미 슈퍼스타였다. 대표팀에서도 최 감독은 황 감독의 그늘에 있었다. 황 감독은 1988년부터 2002년까지 14년 동안 A매치 103경기에 출전해 50골을 터뜨렸다. 최 감독도 69경기에서 27골을 넣었지만 황 감독의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최용수 감독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지역예선에서 6경기 7골을 퍼붓는 활약으로 대표팀의 본선행을 이끌었지만 정작 본선에서는 벤치를 지키는 신세였다. 황 감독은 1990년, 1994년, 2002년 월드컵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폴란드전 선제 결승골로 ‘4강 신화’의 신호탄을 쏘며 영웅이 됐다. 최 감독은 황 감독에게 밀려 1경기 출전에 그쳤다. 두 사람의 경쟁은 이제 지도자로서 제2막을 열고 있다. 최용수 감독은 2006년 서울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11년 황보관 당시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된 뒤 감독 대행을 맡았다가 이듬해 39살의 젊은 나이에 FC서울의 정식 감독이 됐다. 2003년 은퇴한 황선홍 감독은 2008년부터 부산 아이파크를 거쳐 2011년부터 포항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감독으로서는 최용수 감독이 한발씩 앞섰다. 최 감독은 2011년 감독 대행이 된 뒤 바닥에 떨어진 팀을 추슬러 정규리그 3위에 올려놨다. 코치 시절 선수들과 부대끼며 익힌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끈끈한 조직력 아래 묶어냈다. 정식 감독이 된 2012년에는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황선홍 감독은 2012년 FA컵 우승을 이뤘지만 리그 우승은 최용수 감독보다 한발 늦은 2013년 처음 달성했다.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최용수 감독이 먼저 성과를 올렸다. 2013년 최 감독은 서울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비록 결승 무대에서는 광저우 헝다에 3-3(원정 1차전 1-1 무승부, 안방 2차전 2-2 무승부)으로 비기고도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우승컵을 광저우에 내줬지만, 그해 아시아축구연맹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아시아에서 인정받는 명장 반열에 올랐다. 선수 시절 최용수 감독은 지능적인 선수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런데 사령탑으로서 최용수 감독은 선수들의 심리를 꿰뚫고, 전술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고, 효율적으로 선수단을 운영하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선수 시절부터 최 감독을 지켜봐온 고정운 <스포티브이>(SPOTV) 해설위원은 “겉으로 볼 때는 무데뽀 같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굉장히 많다. 자기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절대 쉽게 내비치지 않는다”고 평했다. 최용수 감독이 거둔 성과는 K리그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선수들 덕분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전방에서 데얀과 몰리나라는 특급 외국인 선수가 공격을 주도했고, 중앙에서는 하대성이 중심을 잡았다. 김진규와 아디라는 걸출한 수비수도 있었다. 특히 데얀은 최용수 감독이 지휘한 2011~2013 세 시즌 동안 64골을 넣는 대단한 득점력을 자랑했다. 반면 황선홍 감독의 업적은 순도 높았다. 황 감독은 2008년부터 3년간 전력이 약한 부산 감독으로서 숱한 패배를 맛보면서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황 감독은 “당시 선수들에게 맞추기보다 내가 원하는 축구를 하려고 했다. 선수들에게 안 맞는 옷을 입히려 했다”고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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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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