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30 18:48
수정 : 2014.06.1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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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다큐영화 감독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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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지난 주말, 시골에 일이 있어 가족이 함께 길을 나섰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들뜬 마음도 잠시. 자가용으로 4차선 국도에 진입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아이코’ 하며 눈을 돌렸다. 차에 치인 고라니의 처참한 주검을 본 것이다. 잠시 후, 또, 고라니 주검을 보았다. 처음에는 남편과 내가 먼저 발견해서 아이에게 알려줬지만 나중에는 아이가 먼저 발견했다. “아빠, 여기 고라니 많이 나온대. 그러니까 속도 줄여.” 누가 우리 아들 아니랄까 봐. 여섯살 도영이는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을 보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 국도를 두 시간 남짓 달리는 동안, 우리는 총 여섯마리 고라니의 주검을 발견했다.
로드킬(road kill)에 관해서라면 우리 부부 둘 다 할 말이 많다. 십수년간 야생동물을 치료해온 남편 김영준 수의사는, 차에 치인 동물들을 치료하느라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이 하고 집에 못 들어오는 날도 부지기수다. 총에 맞고, 농약을 먹고, 덫이나 전깃줄에 걸리고, 낚싯바늘이 목에 걸리거나 유리창에 부딪히는 등 온갖 종류의 사고로 야생동물들이 구조센터에 들어오는데,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다름 아닌 교통사고다. 차에 치여 척추를 다친 고라니, 다리가 으스러진 수달, 눈을 다친 수리부엉이 등은 애써 치료한 끝에 기적처럼 살아나기도 하지만, 치유 불가로 안락사를 당하거나 평생 불구로 살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또 수개월에 걸친 치료와 재활훈련을 마치고서 야생으로 돌려보냈는데, 며칠 뒤 다시 교통사고를 당해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허망한 일은 또 없을 것이다.
몇 해 전 로드킬을 소재로 <어느 날 그 길에서>라는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었다. 2004년부터 생태학자 최태영과 연구원 최천권, 최동기, 세 사람은 지리산을 둘러싼 88고속도로와 섬진강변 도로, 19번 국도 4차선 구간에서 벌어지는 로드킬을 조사했고, 나는 그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조사팀은 3년 동안 120㎞의 도로를 거의 매일 왕복하며 억울한 죽음들을 일일이 헤아렸다. 목숨을 건 작업이었고, 한국에 도로가 생긴 지 100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로드킬 조사였다. 세 사람이 30개월 동안 지리산 주변 도로에서 발견한 로드킬은 무려 5769건. 120㎞ 도로에서 이 정도면, 전국 도로에서 발생하는 로드킬에 희생된 동물은 아주 적게 잡아도 100만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개구리, 두꺼비들은 겨울잠을 깨고 막 강가로 내려가는 이른 봄에, 고라니들은 유독 5월에 교통사고를 많이 당한다. 중요한 건, 그들이 심심해서 도로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새끼에게 줄 먹이를 찾기 위해, 가족을 만나거나 사는 곳에 다다르기 위해 그들은 길을 건넌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왜 굳이 도로로 들어와 사고를 당하느냐고.’ 그들에게 변호사가 있다면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우리가 길을 무단횡단한 것이 아니라, 당신 인간들이 멋대로 우리 삶터를 가로질러 길을 낸 것 아니냐’고 말이다.
전국의 도로는 10만㎞를 넘어섰다. 한국은 1㎢당 도로 길이가 1㎞로서, 도로 밀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휴가철, 명절을 제외하고 연중 한가한 도로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계속 도로를 만든다. 녹색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복’, ‘과잉’ 도로 건설에만 2005년 10조원의 예산이 낭비됐다고 한다. 예컨대 2차선 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고 바로 옆에 같은 노선의 고속도로를 새로 만드는 식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돈이 없어 복지예산 증액을 못한다는데, 선거철만 되면 숱한 후보들이 도로건설을 공약으로 들고나온다. 국도·지방도는 지방선거용, 고속도로는 대통령선거용 공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 선거에도 여러 후보들이 표심을 얻기 위해 도로건설을 들고나왔다.
선거를 앞둔 주말이다. 오늘도 아스팔트에서 수많은 고라니와 너구리, 삵, 하늘다람쥐, 새들이 먼지처럼 사라져가겠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생명들을 희생시키며 우리가 질주하는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공멸의 벼랑 끝이 아닌, 생명의 길로 우리를 안내하는 후보에게 나는 표를 던질 것이다.
황윤 다큐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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