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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20 19:11 수정 : 2014.06.20 21:53

[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야생

누구나 저마다의 이름이 있듯, 동식물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름은 아주 알맞게 잘 지은 것도 있는 반면에 엉뚱한 이름도 적지 않다. 야생동물 중에서도 이름이 잘못 붙어 오해를 사거나, 운명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하늘의 제왕’이라 불리는 독수리다. 하지만 한국에서 ‘독수리’라고 부르는 새는 하늘의 제왕인 수리(eagle)류가 아니다. 독수리는 벌처(vulture)라는 맹금류군으로 먹이를 사냥하기보다는 죽은 사체를 처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순한 녀석들이 하늘의 제왕이라니! 이는 사실 이름이 만들어낸 오해다. 우리가 ‘수리’라는 단어를 독립적으로 잘 사용하지 않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냥을 하는 수리류야말로 하늘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다. 검독‘수리’부터 흰꼬리‘수리’, 참‘수리’ 등 큰 먹잇감을 사냥하는 대형 맹금류들이 바로 진짜 수리들이다. 밤 세계를 주름잡는 우두머리 종은 바로 ‘수리’부엉이다. 우리나라에서 연구는 미진하지만 해외 사례를 보자면 검독수리는 여우와 개, 고양이, 너구리까지도 사냥한다.

이름을 잘못 붙여 혼동하는 종들은 또 있다. 조롱이와 황조롱이가 대표적이다. 조롱이보다 노랗고 붉은 녀석이 황조롱이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이는 오산이다. 비교하자면 개와 고양이 사이의 차이만큼 멀리 떨어진 종들임에도, 야생동물을 모르는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에 딱 좋다. 조류학자들이야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니 새삼스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야생동물을 일반인에게 교육하는 현장에서는 큰 혼동을 부르는 이름들이다.

사실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속내는 따로 있다. 이름 때문에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새가 있다. 이미 국지적인 멸종위기에 있으나 우리나라의 현행법으로는 멸종위기로 지정하지 않은 낭비둘기라는 새가 그 주인공이다. 낭비둘기는 우리나라 일부 지역과 중국, 러시아와 몽골에 걸쳐 서식하는 종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집비둘기와 생김새가 매우 유사하다. 벽이나 낭떠러지 부근에서 발견되어 ‘낭’비둘기라 부른다. 1980년대만 해도 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였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일부 남해안 섬과 내륙 절에서 서식이 확인되고 있다. 전남 구례군 화엄사에서 번식하던 개체군이 사라졌고, 이제 지리산의 천은사에 남은 15마리 내외 개체군이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확인된 번식개체군이다.

이 종이 없어져가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름이다. 낭비둘기는 국내에서 공식 종명이 양비둘기다. 한자로는 큰바다 양(洋)을 쓰지만, 서양 비둘기라는 오해를 주기 쉽다. 그렇다 보니 집비둘기 또는 공원비둘기로 오인하기 쉽고, 보호를 받기는커녕 서식지를 교란하고 위해를 가하는 통에 이제는 절멸의 단계에 와 있다. 이름의 오해가 있으니 법적 보호정책에서도 누락되기는 다반사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팀장 부부
집비둘기는 바위비둘기라는 종을 개량한 것으로 낭비둘기와는 다른 종이다. 유럽, 북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까지 분포하는 종이었으나, 일부는 애완용 등으로 개량하여 전세계로 퍼진 상태다. 대규모 행사 때마다 평화의 상징이네 뭐네 하며 여기저기서 풀어둔 까닭이다. 낭비둘기와는 외형마저 비슷하여 특별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차이를 알아차리기 매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일부 인터넷 누리집에서는 낭비둘기를 집비둘기와 함께 도시의 천덕꾸러기로 소개해 그 혼동을 더한다. 가뜩이나 생김새마저 집비둘기와 비슷한데, 이름마저도 종의 특성은 고사하고 외국에서 들여온 종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면 고작 15마리 내외 남은 천은사의 낭비둘기 앞날도 어둡기는 매한가지 아닐까.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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