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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18 19:00 수정 : 2014.07.20 10:02

[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수없이 많은 죽음을 마주한다. 대개 구조되는 동물의 60% 정도는 폐사한다. 2013년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구조된 야생동물은 8000마리가 넘으니 4800마리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죽었다. 그 너머엔 또 다른 죽음들이 존재한다. 구조되는 동물들이 식물만 먹고 지내지 않기에 고기를 급여해야 한다. 수많은 밀웜부터 귀뚜라미와 같은 곤충도 그렇거니와 살아 있는 물고기만 고집하는 녀석들도 있어 미꾸라지도 사용한다. 여기까지는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지만, 그보다 더 고등한 생명체로 넘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친 야생동물들의 균형 잡힌 식단을 고려한다면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사용하기 어렵다. 그러하니 경제적이면서도 영양 균형이 잡힌 병아리를 사용하게 된다. 한 센터에서만 급여하는 수가 연간 4만여마리에 달하니 참 많은 병아리가 희생당한다. 지금이야 다른 방도가 나왔지만 가격과 신선도를 고려하여 살아 있는 병아리를 구매하여 직접 살처분했다. 이쁘디이쁜 병아리를 이산화탄소 상자에 넣고 안락사시켜야 하는 날에는 그리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해서 작업을 하더라도 되도록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 우리끼리만 마음 상하자고. 동물을 살려야 하는 곳에서 50배가 넘는 수의 또 다른 동물을 죽여야만 했으니 이 또한 심한 역설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기야 1년에 약 7억마리에 가까운 또 다른 수평아리들이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간다는 보도를 참고하자면 이는 아무것도 아닌 셈이겠다. 현실적 이윤을 얻기 위해 목숨을 목숨으로 볼 수 없는 축산방법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동의하지만, 막상 경제성 있고 균형 잡힌 식단을 공급해야 하는 당사자로서는 쉽게 외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얼마 전 야간에 들른 한 근린공원에서는 금지임에도 불구하고 낚시를 즐기던 청년이 있었다. 무엇엔가 화가 난 듯 신경질적인 통화를 해대더니 이내 건져 올린 블루길을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고, 발로 차고 밟아댔다. 보다 못해 몇 마디 듣기 싫은 소리를 하자, 위해 외래어종 죽이는데 뭔 상관이냐는 투의 답이 돌아왔다. 맞다. 블루길은 어쨌거나 현행법상 위해 외래어종이고 정부에서는 퇴치사업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입한다. 하지만 죽여야 하는 동물에게도 지켜야 하는 예의라는 게 있다. 사람의 이득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 넘어와 이제는 쓸모없는 동물이 되어버렸다 해도 그 죽음을 거둘 때는 예의를 지켰으면 한다.

김영준 수의사 부부.
동행하던 일행들과 생명경시에 대한 근원이 어디서부터일까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교육 또는 인간성 자체의 문제일지, 자본주의가 팽창하는 현대 사회의 한계일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딱히 답도 없는 이야기였다. 경제적 기준이라는 미명 아래 그 생명의 무게를 효용가치에 따라 값을 매기는 현재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실로 어려운 주제였다. 20년 내외를 사는 소는 고작 30개월 남짓 살다 삶을 마감하고, 야생에서 10년을 넘게 사는 돼지는 5개월이면 도축장행이다. 심지어 닭은 10년 이상을 살아갈 수 있음에도 40일이면 생을 마감해야하는 사회다. 고작 블루길 몇 마리 발로 짓이겨 죽였다 해서 문제가 되는 사회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46억년이 넘는 지구 역사상 궁극적 필요 이상으로 생명을 죽여 없애는 동물은 인간이라는 종을 제외하고는 없을 듯하다. 지혜로운 사람(호모 사피엔스)이라는 의미의 학명을 가진 동물종치고는 지혜롭지 않은 구석이 많다. 나아가 동족까지도 그 대상으로 삼고 있으니 말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떨어지는 포화를 보기 위해 산 위로 가 건배까지 즐기는 이들을 보며 이 생명경시의 풍조는 어디에까지 이를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김영준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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