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나에게는 지인들이 모르는 아들이 하나 있다. 그러니까, 내게는 아들이 둘이다. 유치원 다니는 아들 하나. 그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형 하나. 큰아들은 올해 스물셋. 잘생긴 청년이다. 이름은 마이크. 내가 마이크와 인연을 맺은 사연은 이러하다. 작년 여름, 캐나다 야생으로 여행을 갔다. 밴쿠버 아일랜드로 가는 거대한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갑판 위로 올라와 바다를 즐길 때, 훤칠한 금발의 청년이 가방에서 몇 장의 사진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혹등고래, 범고래, 회색고래… 밴쿠버 인근 바다에 사는 다양한 고래들의 구분법부터 고래들이 위협받는 원인, 그들을 돕는 방법 등.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는 ‘내추럴리스트’(Naturalist)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부터 새로운 직업군으로 떠오른 ‘생태해설사’와 비슷해 보였다. 이날의 설명회가 내게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 배가 고래관광을 주목적으로 운영되는 배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따금 고래를 볼 수도 있지만, 그 배는 어디까지나 사람들과 물류를 실어 나르는 거대한 여객선이었다. 단순한 관광이나 운송에 그칠 수도 있는 여객선 위에서 고래 보호를 위한 대중교육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캐나다 정부의 ‘센스’가 부러웠다. 비록 이날 고래를 만나진 못했어도, 훈남 내추럴리스트와 고래 이야기를 접한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고래를 만나는 행운은 뜻밖에 ‘수산시장’에서 찾아왔다. 고래 고기? 그럴 리가. 강이 태평양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캐나다 최대의 어촌마을, 스티브스턴. 각종 해산물을 파는 어부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노량진 시장과 다를 바 없는 그곳에, 고래가 그려진 배들이 있었다. 전단지에는 “고래 볼 수 있음. 100% 보장”이라고 써 있었다. 얼마나 고래가 많기에? 봐도 좋고, 안 봐도 좋다는 기분으로 배를 탔다. 한 시간쯤 달리던 배가 갑자기 멈췄다. 시끄럽던 엔진 소리도 잦아들었다. 범고래가 자주 다니는 지점에 이르렀으니 잘 살펴보라고 한 젊은 아가씨가 말한다. 그녀도 내추럴리스트다. “범고래는 사람과 닮은 점이 많아요. 지능이 높고, 사회성이 강하죠.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고, 모계 중심 사회라서 새끼는 다 커서도 엄마 근처에서 어울려 살아요.” 그 순간 거대한 범고래가 바로 몇 미터 앞에서 점프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할머니, 엄마, 새끼로 이루어진 3세대라는 내추럴리스트의 말을 사람들이 신기한 눈빛으로 듣고 있을 때, 또 다른 범고래가 나타난다. 수컷이다. 얼마 안 가서 또 다른 그룹이 나타난다. 연이어 점프를 하는 서너 마리의 범고래 떼. 협동사냥 중이다. 그들은 마침내 사냥에 성공한다. 범고래 가족이 잡은 것은 놀랍게도 상괭이(작은 고래류)였다. 장관이었다. 배에서 ‘Whale Adoption Program’ 즉 고래 입양을 요청하는 전단지를 보았다. 일정한 후원금을 내고 야생 범고래 중 하나의 부모가 되는 영광을 얻는 것으로서, 후원금은 전액 고래 연구와 보호를 위해 쓰인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을 수족관에서 주관하는 점이 특이했다. 밴쿠버 수족관에는 전시된 범고래가 없다. 대신 이렇게 야생고래 연구와 보전을 위해 힘쓴다. 전에 어느 눈표범 보전단체를 통해 한 히말라야 눈표범의 ‘엄마’가 된 적이 있던 나는, 입양이 낯설지 않았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내가 입양하는 아이가 누구인지, 이름과 나이를 알 수 있는 점이었다. 전단지에는 가까운 바다에 사는 범고래들의 계보와 이름, 태어난 해가 다 적혀 있었다. 등지느러미의 특징으로 개체를 구분하는 학자들의 연구 덕분이다. 내추럴리스트는 내게 젊은 수컷 고래를 추천했다. 그가 바로 마이크였다. 마이크를 직접 보진 못했지만, 태평양을 누비는 ‘큰아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가슴은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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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김영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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