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황윤·김영준의 오! 야생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들의 슬픈 삶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 때, 나는 철창에 갇히지 않은 ‘야생’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에서 야생을 본단 말인가. 사자, 코끼리, 기린은 알아도, 막상 내가 사는 한반도의 야생동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마주할 때, ‘야생동물소모임’을 알게 됐다. 바로 회원이 됐고, 동료들과 처음으로 야생을 만나러 갔던 곳이 바로 순천만이었다. 겨울이었고, 새벽이었다. 동이 트기 시작했고, 우리는 갈대숲에 몸을 숨기고 야생과의 조우를 기다렸다. 멀리서 뚜루루 뚜루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긴 다리와 긴 목, 우아한 날개를 가진 그들이 삼삼오오 가족 단위로 날아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이 내 머리 위로 날아갔다. 우아한 몸짓, 독특한 소리, 러시아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비행…. 가슴이 두근거렸다. 순천만의 흑두루미들은 그렇게 나에게 야생의 경이로움을 처음으로 알려준 존재들이었다. 그들과 만난 순간은, 살면서 힘들 때마다 기억의 창고를 뒤져 꺼내보는 사진 같은, 소중한 선물이다. 순천만에는 흑두루미뿐 아니라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혹부리오리, 도요새 등 귀한 손님들이 겨울마다 찾아오고, 수달, 삵 같은 멸종위기 젖먹이 짐승들도 많이 산다. 이들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나의 반려자 김영준 수의사가 처음으로 야생동물수의사의 척박한 길을 걸었던 곳이 바로 순천이었다. 정식 구조센터도 없었던 당시, 숱한 야생동물들이 총에 맞고, 덫에 걸리고, 농약에 오염된 먹이를 먹고, 유리창에 부딪히고, 차에 치여, 피 흘리며 그의 손에 들어왔다. 뜬금없이 순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최근 독특한 영화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다. 전남 순천만에서 8월 말에 열리는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는 올해로 두번째를 맞은, 동물을 주제로 한 영화제다. 순천만정원은 아이들과 반려동물을 동반한 가족들이 야외상영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평소에 반려견을 동반한 정원 입장을 허가받지 못했던 순천 시민들은 영화제 기간만큼은 반려견과 함께 정원에 들어와 마음껏 거닐 수 있었다. 먼 곳에서 개를 데리고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도 있었다. 영화제 쪽은 서울 용산역에서 전남 순천역까지 운행하는 기차 한칸을 빌려, 관객들이 반려동물을 데리고 영화제에 올 수 있도록 지원했다. 덕분에 ‘개도 사랑하지만 영화도 사랑하는’ 관객들은 개를 쓸쓸한 집에 덩그러니 남겨두지 않고도 영화제를 즐길 수 있었다. 순천만정원 한쪽에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을 위한 40개의 텐트가 설치됐다. 어찌 보면 흔한 ‘이벤트’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번이라도 개를 돌봐 본 사람은 이것이 참 소중한 배려라는 걸 알 것이다. 개와 고양이를 데리고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을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어른과 아이들, 반려동물들이 모처럼 갑갑한 도심을 벗어나 넓은 정원에서 휴식하며 영화를 볼 수 있는 영화제는 흔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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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김영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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